증 례
52세 남자가 건강검진에서 혈색소가 높아 내원하였다. 담배를 매일 1갑씩 30년 동안 흡연하였으며, 주 3-4회 소주를 2병 이상 음주하였다. 배우자는 환자가 수면 시에 코골이가 매우 심하고 간혹 숨을 수초간 쉬지 않는다고 하였다. 최근에 두통이 잦아 진통제를 자주 복용하였다. 내원 시 혈압 140/90 mmHg, 호흡 20회/분, 체온 36.7℃, 키 170 cm, 체중은 95 kg이었다. 결막은 충혈되고 얼굴과 손이 매우 붉었다. 청진에서 심음과 폐음은 정상이었다. 복부에서 간과 비장은 만져지지 않았고 복부비만이 확인되었다. 혈액 검사에서 혈색소 18.9 g/dL, 백혈구 4,000/mm³, 혈소판 280,000/mm³, 적혈구 용적률 60%, 혈액요소질소 30 mg/dL, 크레아티닌 1.0 mg/dL였다.
서 론
적혈구증가증의 분류: 원발성, 이차성
적혈구증가증은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질환으로 정확한 적혈구증가량(red blood cell mass)은 동위원소의 확산 원리를 이용하여 측정해야 하는 검사의 어려움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검사하기 쉬운 혈색소의 증가나 적혈구 용적률(hematocrit)의 증가로 정의한다[
1]. 적혈구증가증은 진짜로 혈색소가 증가된 경우와 탈수 등으로 혈장량이 감소하여 혈색소가 증가된 것처럼 보이는 거짓 또는 비교적혈구증가증이 있다. 적혈구증가증은 원인에 따라 골수에서 자발적으로 생산이 증가하는 일차성과 기저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차성으로 분류된다.
적혈구증가증의 원인
적혈구생성인자(erythropoietin, EPO)는 콩팥에서 주로 생성되어 분비되는 당단백호르몬으로서 적혈구의 조혈세포를 자극하여 적혈구 생산을 도모한다. EPO는 일정속도로 분비되어 저산소증이 없는 정상인에서는 항상 일정한 혈장 농도를 유지하는데, 조직에 저산소증이 있는 경우 신체가 적응하기 위하여 생리학적으로 콩팥에서 생산량이 증가한다. 따라서 이차적혈구증가증은 모두 혈청의 EPO의 증가와 연관이 있다(
Table 1). 예를 들어 폐질환이 있거나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경우, 일산화탄소 중독 시에 그리고 수면 무호흡이 있는 경우에 EPO의 분비가 증가하여 적혈구가 많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EPO가 비정상적으로 과생산되는 종양이 있거나 신동맥협착이 있는 경우에도 적혈구증가증을 유발하게 된다[
1,
2]. 안드로겐이나 생합성 EPO (recombinant EPO)의 투약도 적혈구증가증을 일으킬 수 있다[
3]. 원발성적혈구증가증은 조혈계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EPO와 무관하게 적혈구가 자발적으로 지속적으로 증식하는 골수증식 질환이다.
적혈구증가증의 임상 양상
적혈구증가증은 별다른 증상 없이 우연히 건강검진 등을 통해서 발견되기도 한다. 혈액 검사에서 대체로 혈색소는 남성 17 g/dL, 여성 15 g/dL 이상인 경우에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본다. 적혈구 용적률은 남성 50%, 여성 45% 이상일 경우 비정상으로 판단하며, 남성 60%, 여성 55% 이상일 경우는 대개 예외 없이 적혈구량이 증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증상은 적혈구 증가의 원인이 되는 기저 질환에 의한 것과 적혈구량 증가에 따라 혈액의 높은 점성도와 혈전증에 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어지럼증, 이명, 두통, 시력장애와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있을 수 있고 고혈압이 종종 동반된다. 진성적혈구증가증의 경우 샤워 후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비장비대로 인한 소화불량 및 좌상복부 불편함이 나타날 수 있고, 쉽게 멍이 들거나, 코피가 나거나, 위장관 출혈을 동반하기도 한다. 저산소혈증으로 인한 적혈구증가증 환자의 경우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청색증을 관찰할 수 있다. 신체 검사에서는 눈 점막이 충혈되어 보이고 안색이 붉어 간혹 주변에서 낮에 음주를 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손바닥에서 손가락 끝까지 울혈되어 있고 손발저림을 호소할 수 있다. 비장비대는 진성적혈구증가증에서 볼 수 있어 이차성 적혈구증가증 감별에 도움이 된다.
적혈구증가증의 진단적 접근
혈액 검사에서 혈색소 또는 적혈구 용적률이 증가되어 있는 적혈구증가증의 감별진단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교과서적으로는 적혈구량의 측정이다[
1]. 그러나 적혈구량의 직접적인 측정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실제로 측정하는 병원도 드물기 때문에 바로 혈청 EPO를 측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첫 번째로, 측정한 EPO가 정상보다 낮다면 진성적혈구증가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JAK2V617F 또는 JAK2 Exon12 유전자돌연변이가 90-95%에서 확인되므로 반드시 유전자돌연변이 검사를 한다(
Table 2) [
2,
4]. 적혈구증가증 외에 백혈구 수와 혈소판도 동반되어 상승하였다면 진성적혈구증가증과 같은 골수증식성 질환을 더욱 더 시사한다. 두 번째로, 혈청 EPO가 증가되어 있다면 저산소혈증에 의해 생리적 반응으로 분비가 증가한 것인지 고형암 등에 의한 자발적인 생산증가인지를 감별해야 한다. 따라서 동맥혈산소포화도를 측정하여 92% 이하인 경우는 저산소증으로 보고 좌우단락이 있는 심질환이나 폐질환이 있는지, 고산지대에 거주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산소포화도가 정상인 경우는 흡연력을 확인한다. 흡연가인 경우는 혈색소와 결합하는 산소가 일산화탄소로 치환되어 EPO가 증가될 수 있기에 일산화탄소혈색소를 측정하고, 높게 보고되면 흡연가적혈구증가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지속적인 금연으로 혈색소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으며, 금연을 하지 못할 경우 정기적인 정맥절개를 시행한다. EPO는 높고, 동맥혈산소포화도는 정상이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적혈구증가증 환자는 혈색소병증(hemoglobinopathy)과 EPO를 분비하는 종양으로 압축되며 이 두 질환을 감별해야 한다[
1]. 우선 산소-혈색소 친화도를 측정하여 높게 보고된다면 혈색소의 산소친화도가 과하게 높아 조직으로 산소를 전달하지 못하는 질환을 시사하는 것으로 고산소친화성혈색소병증(high oxygen affinity hemoglobinopathy)으로 진단한다. 산소-혈색소 친화도가 정상이라면 혈색소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EPO가 정상적인 되먹이억제(negative feedback)에 반응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는 상태이므로 EPO를 분비하는 종양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복부 골반 컴퓨터단층촬영으로 신낭종, 물콩팥증, 신장암, 부신선종, 자궁평환근종, 간암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뇌에 발생하는 종양도 EPO를 만들 수 있는데, 대부분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하므로 뇌영상 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하다(
Fig. 1).
결 론
적혈구증가증은 혈색소 또는 적혈구 용적률의 비정상적인 상승으로 정의되며, 그 발생 원인에 따라 진단과 치료가 다르므로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적혈구증가증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은 저산소혈증의 유무와 혈청 EPO의 증감 여부이다. 저산소혈증은 생리학적으로 EPO의 과분비를 유도하여 이차성 적혈구증가증을 유발하며, EPO가 낮음에도 적혈구증가증을 보이는 경우는 골수에서 자발적으로 적혈구를 과생산하는 원발성, 즉 진성적혈구증가증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산소증을 보이는 만성 폐질환이나 좌우단락이 있는 심질환의 경우 적혈구증가증이 나타나게 되며, 비만 등으로 인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도 저산소혈증을 유발하기에 병력청취나 진찰 시에 반드시 이를 확인해야 한다. 흡연으로 인한 일산화탄소혈색소증은 흡연자적혈구증가증을 유발할 수 있어 흡연자인 경우 적혈구증가증의 원인으로 의심해 봐야 한다. 최근에는 노화 예방이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안드로겐이나 재조합 EPO의 투약도 자주 확인되고 있어 관련된 약물 투약력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저산소혈증은 없으나 EPO가 증가된 적혈구증가증의 경우 EPO를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종양과 고산소친화성혈색소병증을 의심할 수 있다. EPO가 감소되어 있다면 진성적혈구증가증일 가능성이 높고 골수조직 검사와 JAK2 유전자돌연변이 검사로 확진할 수 있다[
1,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