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위마비는 위의 구조적인 이상, 특히 유문 협착이 없으면서 식후에 위배출이 느려지는 것을 뜻한다[1]. 본고에서는 위마비의 전반적인 병태생리, 증상, 진단 등에 대해서 알아보고 약물 치료와 날문(pylorus)에 특화된 치료법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본 론
위마비는 구조적인 위의 폐색이 없으면서 오심, 구토, 복부 팽만감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증후군이다[2].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3%에서 관찰되며, 유병률은 남자에서 10만 명당 9.6명(95% CI 1.8-17.4), 여자에서는 37.8명(95% CI 23.5-52.4)으로 여자에서 다소 높다고 알려져 있으나, 미국 내 백인 인구 중심의 연구 결과이므로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3].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과거에 비해 유병률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4,5]. 제1형 당뇨의 30-50%, 제2형 당뇨의 15-30% 환자에서 위마비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4]. 하지만 표본 선정 오차에 의해 다소 높게 파악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의 보고에 의하면 제1형 당뇨 환자의 5.2%, 제2형 당뇨 환자의 1.0%에서 위마비가 나타날 위험도가 있다고 11년간의 관찰 연구에서 보고하였다[5].
병태생리
인체에서 위는 위산을 분비하여 음식물의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1]. 또한 위는 위적응(accommodation)을 통하여 음식을 저장한 후 음식을 잘게 갈아서 십이지장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1]. 위적응은 주로 위저부에서 일어나며, 날문방(antrum)에서는 음식을 잘게 갈아서 날문(pylorus)을 통해서 십이지장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5]. 음식물은 2 mm 이하의 크기로 갈려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2 mm가 넘는 음식물은 십이지장 흡수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1,5].
이러한 위마비의 병태생리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1]. 하지만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당뇨에 의한 위마비가 그나마 잘 알려진 편이다. 미주 신경의 탈신경, 카할 간질 세포(interstitial cell of Cajal)의 소실, 산화질소의 신경 발현 소실 등이 그 기전으로 알려져 있다[1]. 고혈당이 날문방의 수축에 영향을 미쳐서 위배출이 감소하였다는 보고가 있으며, 반대로 인슐린에 의한 저혈당이 위배출을 증가시켰다는 연구가 있어 혈당이 위배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6,7]. 당뇨 및 특발성 위마비 환자와 정상군 비교에서 카할 간질 세포의 수가 당뇨 및 특발성 위마비 환자 모두에서 정상군에 비해 떨어져 있었다[8,9]. 또한 최근 연구에 의하면 CD206+ 대식세포의 수와 카할 간질 세포 감소의 유의성이 당뇨 위마비에서 관찰되고 있어, CD206+ 대식세포가 카할 간질 세포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지 추정하고 있다[8]. 특발성 위마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위적응에서의 문제, 날문방의 운동 저하 또는 날문의 과도한 압력 증가로 인한 협착 등에 의해서 위마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10]. 날문의 기능 이상은 1986년에 당뇨 위마비 환자에서 처음 알려졌는데, 날문의 간헐적인 수축 및 이로 인한 기저압력의 증가가 알려졌다[11]. 하지만 날문방의 운동 저하도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관찰되어 이러한 날문의 과도한 수축이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의한 2차적인 발현인지 명확하지 않았다[11,12].
날문 구조와 신경 지배에 대한 동물 실험에 의하면 십이지장에 산을 투여하면 날문의 압력이 증가하였고, 이것은 tetrodotoxin과 naloxone에 의해 중화되었다[13]. 반대로 콜린성, 아드레날린성, 세로토닌 메커니즘은 효과가 없었다[13]. 날문의 수축과 이완은 또한 카할 간질 세포와 민무늬근육을 통해 이루어졌다[13]. 또한 장관의 억제성 신경전도는 산화질소와 퓨린계 신경전도체에 의해 날문 근육이 조절된다고 동물 실험에서 밝혀졌다[14]. 많은 위마비 환자들에서 통증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이 관찰되는데,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는 위장운동신경의 흥분을 억제하고 신경전달물질의 유리를 방해한다[15]. 따라서 마약성 진통제는 위배출을 늦어지게 한다[15].
수술 후 위마비는 수술 직후에 증상이 있을 때 의심할 수 있으며, Billroth 1형 또는 2형 수술, Roux-en-Y 위공장절제술, 위저부주름술(fundoplication), 비만 수술, 식도 절제술, 휘플 수술 또는 폐이식 등의 수술 이후 관찰된다[1,5]. 최근에는 위저부주름술 이후 위마비가 많이 관찰되고 있으며, 수술 이후 조기 포만감, 복부 팽만감 등의 증상이 있으면 위마비를 의심해야 한다[1]. 이러한 위마비는 미주신경 손상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2]. 그 외에도 파킨슨병, 결합조직질병(connective tissue disease), 자가면역 질환, 신부전, 갑상선기능저하증, 췌장암이나 림프종 그리고 신생물딸림증후군(paraneoplastic syndrome), 그 외 노로바이러스, Ebstein-Barr 바이러스,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 헤르페스 바이러스 등의 감염 등에 의해서도 위마비는 발생할 수 있다[2]. 약제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앞서 기술한 마약성 진통제 외에도 항콜린성 약제들(항정신성약제, 항히스타민제, 삼환계 항우울제, atropine, benztropine 등)도 위마비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2].
증상
특징적인 증상으로는 오심(90% 이상), 구토(60-80%), 조기 포만감(60-80%), 복부 팽만감(40-70%), 식후 포만감, 복통(18%) 등을 호소한다[2]. 구토는 식후 1-12시간 전에 섭취한, 소화가 거의 되지 않은 음식을 위산과 더불어 토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며 오심, 복통,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2]. 당뇨에 의한 위마비는 상대적으로 오심 구토가 더 자주 나타나고, 특발성 위마비는 복통이 상대적으로 더 자주 나타난다[16,17]. 심하지 않은 경도의 위마비는 체중 감소도 심하지 않으나, 증상이 심할수록 체중 감소도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18]. 또한 우울증도 절반 이상의 위마비 환자에서 관찰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분장애로 인하여 위마비가 더 악화될 수 있다[18].
진단
위장관 조영술
바륨 등을 이용한 위장관 조영술은 바륨 등의 조영제를 먹은 후 상부 위장관을 관찰하는 것으로, 상부 위장관 내시경을 대체하는 검사로 쓰이고 있다. 위의 연동운동 저하 등을 관찰함으로써 위마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륨은 음식물에 비해 저장성(hypo-osmolar)이기 때문에 위마비의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으나 소장 폐색이나 위창자간막동맥증후군(superior mesenteric artery syndrome) 등의 진단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2].
치료
약제
약제로서는 5-HT3 길항제이자 D2 길항제인 metoclopramide는 항구토제로 쓰이며, 또한 5-HT4 작용제 효과도 있어 콜린성 신경에서 아세틸콜린을 분비하여 위배출이 증가되는 위장관 운동 촉진제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혈액뇌관문을 통과하여 중추신경에 작용하여 추체외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26]. 이러한 추체외로 부작용 때문에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5일 이내로만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26]. 또한 노인층이나 장기 복용 시에 지연성 운동장애(tardive dyskinesia)가 부작용으로 보고되고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26]. 또다른 도파민 수용체 길항제인 domperidone도 위장관 운동 촉진제 및 항구토제로서 효과적이며, metoclopramide와는 달리 혈액뇌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나, 앞서 기술한 구토 중추는 혈액뇌관문 바깥에 위치하고 있어, 항구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7]. 하지만 부작용으로 두통, 입 마름, 설사, 불안 그리고 고프로락틴혈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27]. 또한, 하루 30 mg 이상의 고용량을 60세 이상에서 장기간 투여 시 심전도의 QT 연장으로 인한 심실빈맥 등의 부정맥의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성인 1회 10 mg, 1일 3회, 치료 기간은 최대 1주일 이내로 권고하고 있다[28]. Macrolide계 항생제인 erythromycin과 azithromycin도 motilin 수용체에 작용하여 상부 위장관의 이동성 운동복합체(migrating motor complex)를 자극하는 위장관 운동 촉진제로 사용 가능하나, 고용량으로 사용 시 심부정맥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어 주의를 요한다[28]. 또한 4주 이상 장기간 사용 시 빠른 내성(tachyphylaxis)이 나타날 수 있다. 위마비 환자 중 일부에서는 위적응이 감소되어 있는데, erythromycin은 위적응을 감소시킬 수 있어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1]. 그 외 5-HT1A 작용제인 buspirone도 일부 소규모 연구를 통해 위적응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증명되었다[29]. 그외 하제로 주로 알려진 5-HT4 수용체 작용제인 prucalopride도 위마비에서 증상 개선에 유의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최근 발표된 위약 대조군 연구에서 당뇨성 위마비 환자에서 위배출 및 증상 개선에 유의한 효과를 보였다[30]. 합성 ghrelin 작용제인 relamorelin 같은 주사 형태의 신약도 당뇨병성 위마비에서 각광받고 있으며, 2상 연구에서 증상 개선에 있어 유의한 효과가 증명되었다[31]. 항구토제도 심한 구토를 동한 위마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5-HT3 길항제인 ondansetron과 granisetron도 구토가 심한 위마비에서 화학수용체 방아쇠 구역(chemoreceptor trigger zone)에 작용하여 증상 개선 효과가 보고되었다[32]. 하지만 고용량 ondansetron의 경우, 심전도상 QT 연장을 통한 부정맥 위험성이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33]. 그 외 aprepitant로 대변되는 neurokinin 길항제도 대조군에 비해 유의한 오심 개선 효과가 증명되었다[34]. 또한, 상당수의 위마비 환자들에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마약성 길항제인 naloxone 투여 시 위운동저하가 호전되었다는 보고가 있다[35]. 또한, 삼환계 항우울제(amitriptyline, nortriptyline, desipramine)가 오심, 구토 등의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36]. 그러나 한 무작위 배정 연구에서는 nortriptyline은 10 mg 용량에서 초기에 오심 및 복통 등의 증상 개선 효과가 있었으나 지속적인 효과는 떨어진다고 보고하였다[37]. Mirtazapine이 30명의 불응성 위마비 환자에게서 오심, 구토 등 증상 개선을 시켰다고 하였으나 14명이 졸음 및 피로감의 부작용을 경험하였고, 6명은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치료를 중단하였다고 보고하였다[38].
위전기자극술
위전기자극술(electrical stimulation)은 심장 부정맥에 쓰이는 것과 유사한 조율박동기(pacemaker)를 위에 삽입하여 위운동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39]. 원리는 고주파(12 cpm)의 저에너지 짧은 펄스 신호를 위에 삽입한 신경자극 부위에 보내어 위의 운동능력을 개선하는 데 있다. 초기 일부 연구에서는 증상 개선을 보였으며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 받았으나, 최근 발표된 메타 분석에서는 그 효과를 대조군에 비해서 유의하게 보이지 못하였다[40]. 또한 최근 각광받는 내시경적 유문근육절제술(gastric peroral endoscopic myotomy, G-POEM)과의 경향성 비교 연구에서도 유의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였다[41].
내시경적 치료
최근 위마비 중에서도 날문에 대한 치료법이 각광받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보튤리늄 독소 주사 및 내시경을 통한 풍선 확장술 그리고 최근에는 전신마취 하의 G-POEM 등이 있다[1,42]. 보튤리늄 독소 주사는 콜린 신경 말단의 아세틸콜린의 세포외유출을 막아서 날문조임근의 수축하는 근육을 억제시킨다[43]. 기존의 여러 연구에서는 증상 개선도 보고 되었으나, 무작위 대조군 연구에서 그 효과가 확실하게 증명되지 못하였다[43,44]. 보튤리늄 독소 주사 치료의 문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느 부위를 얼마 깊이로 찔러서 주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명확하게 확립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43]. 보튤리늄 독소 주사 치료 효과는 영구적이지 못하고 평균 3개월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43].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G-POEM은 전신 마취 하에 경구로 내시경으로 삽입하여 날문조임근을 절개하는 방법이며, 여러 연구 및 메타 분석에서 그 효과가 인정받고 있다[41,45,46]. 하지만 어떤 위마비 환자에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는데, endoflip 같은 장비를 통하여 날문조임근의 탄성도 측정이 도움이 된다고 보고되고 있다[47,48]. 또한 간접적으로 기존에 보튤리늄 독소 주사 치료에 잘 반응하였던 환자들에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 기존에 사용하던 위십이지장 내압 검사와 endoflip을 비교한 연구에서 endoflip이 날문조임근 탄성도에서 있어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고 보고하였으며[49], 정상군과 위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위마비 환자들에서 날문의 탄성도가 유의하게 감소되어 있다고 보고하였다[50]. 최근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날문조임근의 탄성도는 10 mm2/mmHg 이상을 정상으로 판정하고 있으며, 이보다 낮을 경우는 위마비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8,50,51]. 하지만 endoflip은 날문조임근의 수축력보다는 강직도나 탄성도를 측정한다는 한계가 있고, 날문방 운동저하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1,52].
예후
당뇨병성 위마비는 한번 진단이 되면 당뇨 조절을 잘하여도 호전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바이러스 또는 박테리아 장염에 의한 위마비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2,3]. 또한, 수술 이후에 나타나는 위마비는 남아 있는 신경의 적응 등으로 인해서 서서히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2,3]. 최근 늘어나고 있는 췌장 이식 이후 당뇨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병성 위마비의 호전 여부를 연구한 소규모 연구에서 췌장이식 전후 위전도 검사를 시행하였을 때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위마비 호전을 보였다고 하였다[55,56].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에서 위장관 촉진제 등의 약제 효과가 완전히 배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