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입원의학 리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2021년 1월, 입원전담전문의(hospitalist) 수가가 시범사업에서 본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시범’이라는 단어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제도가 확산되기를 기대하였지만, 낮은 수가와 경직된 운영 규정으로 진료 현장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력부족과 평일 주간 모델(1형)로의 쏠림 현상까지 드러나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어렵게 시작한 수가 사업이 제도의 확산과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는 제도적 개선을 위해 관련 학회 및 연구회와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입원전담전문의들도 스스로 입원의학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 여기서 입원의학 전문가라 함은 개인 수준에서는 general care와 다빈도 질환, 중증 질환의 전문가이면서, 더 나아가 병원의 진료 프로세스를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개선시키는 역할까지를 포함한다.
본론
1999년 미국의학회(Institute of Medicine)의 보고서 “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care system”은 medical error 에 의한 사망이 매년 1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하여 미국 의료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3]. 이는 당시 교통사고나 유방암에 의한 사망보다 많은 수로, 질병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진료 수행 및 전달 과정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실제 진료현장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체 오류의 80% 이상을 차지하면서[4],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쉬운 입원 진료 영역이 가장 중요한 변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 입원진료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 시작되었던 입원전담전문의 제도[5]는, 안전성 제고라는 시대적 과제와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6]이라는 제도적 변화를 맞아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도 진료를 넘어, 안전 및 질 개선 활동(safety & quality improvement), 협진, 행정, 교육, 연구로 넓어졌으며[7,8], 미국입원의학회(Society of Hospital Medicine)도 입원전담전문의가 알아야 하는 입원의학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의주요 범주에 환자안전, 의사소통, 협업, 리더십을 아우르는 진료시스템(healthcare systems)을 포함시켰다(Table 1) [9].
입원의학과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health care)
의료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함께 내포하는 용어가 바로 “가치(value)”이다. 가치라고 하면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되지만, 의료에서는 다음의 공식으로 가치를 정의하고 있다[10].
이 정의에 따르면 의료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1) 사망률 감소나 환자 만족도 증가와 같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2) 같은 질의 의료를 더 적은 비용으로, 즉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으로 미국에서는 의료의 질 향상 및 막대한 의료비 절감을 위해 2013년도부터 value-based purchasing (VBP)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VBP는 폐렴, 심근경색, 심부전, 뇌졸중 등의 다빈도 중증 질환들을 중심으로, 사망률, 재입원율, 환자만족도와 함께 필수 약물 투여율, 환자 교육 등의 진료 과정, 불필요한 시술과 카테터 감염 등의 합병증과 같은 질지표를 비용과 함께 평가해 우수 병원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11].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폐렴,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주요 질병의 지표 분석 결과를 공개하는 의료기관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VBP와 같은 맥락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진료의 안전과 효율을 제고하기 위한 또다른 활동은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이다[12].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 캠페인은 관행적으로 시행되는 검사, 투약, 시술들 중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들을 줄임으로써 비용 절감뿐 아니라 합병증 예방 및 재원 기간 단축 효과까지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입원의학 영역에서도 미국입원의 학회(Society of Hospital Medicine)와 입원의학저널(Journal of Hospital Medicine)이 입원 환자에서 관습적으로 시행되는 검사와 치료 중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things we do for no reason (TWDFNR)” 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기적으로 선정, 공개하고 있다(Table 2) [13,14]. 국내에서는 대한 내과학회를 포함하는 20여 개의 전문 학회가 대한의학한림원과 함께 “현명한 선택”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15].
공동진료(co-management)
입원전담전문의의 안전 및 효율 제고 효과가 입증된 또다른 영역은 외과계 공동진료(surgical co-management)이다[16,17]. 입원전담전문의는 I/O control, 항생제 사용, 혈당 및 혈압 조절, 항응고 치료, 위험도 평가 등의 general care를 맡고, 외과의는 수술과 상처 관리에 전념하는 역할분담 시스템을 일컫는다. 최근 메타분석에서 입원전담전문의를 포함하는 다학제 공동진료가 재원 기간 단축뿐 아니라 사망률 감소 효과도 있다고 보고하였다[18]. 이러한 결과에 힘입어, 공동진료의 대상이 외과계 뿐 아니라 신경과나 다른 내과 전문분과와 같은 비(非)입원전담전문의 환자들까지로 더 넓어졌다.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
입원진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입원전담전문의들의 병원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가주의가 필요하다. 애초에 의학 자체가 “do no harm”이라는 상징적인 문구를 포함해, 환자 중심,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질 개선 노력,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회피 등 높은 수준의 전문가주의를 요구하는 학문이다. 그중에서도 입원의학은 높은 중증도와 긴급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정보의 불균형과 진료선택권 측면에서 취약한 상태인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자율규제(self-regulation)가 더욱 강조된다.
특히, 진료 과정에서 위협적이거나(intimidating) 분열을 유발하는(disruptive)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21]. 위협적인 혹은 분열 유발 행동은 병동의 연락을 받지 않거나 간호사나 환자/보호자에 대한 강압적인 발언이나 태도,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 등을 일컬으며, 이는 단순히 팀워크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의료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환자 만족도 저하, 비용 증가로 연결된다.
동료와 환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협적인 혹은 분열 유발 행동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와 함께(zero tolerance), 해당 사례 발생 시 이를 처리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사전에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
미국에서는 안전성과 효율성을 내포하는 “의료의 가치 (value) 제고”라는 사회적 요구를, 입원전담전문의들이 성공적으로 수행해 입원진료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23,24]. 그와 함께 입원의학도, 의료에서의 가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제고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하는 학문으로 성장해왔다. 입원 의학의 성공 사례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부족한 인력의 대체제가 아니라, 입원진료를 책임지고 더 나아가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입원전담전문의들이 행정, 연구, 교육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며 병원을 혁신하고 입원의학의 가치를 입증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