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페니실린과 세팔로스포린 등의 베타-락탐(beta-lactam, BL) 항생제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감염병 치료에 사용되는 필수 약물이다. BL 항생제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BL 알레르기)은 BL 항생제의 다빈도 사용과 BL 항생제 간 유사한 화학적 구조의 공유로 인한 교차반응으로 인해 임상적으로 중요하다[1,2]. BL 알레르기의 원인 약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불확실한 정보로 인해 항생제를 사용하는 개인에게나 공중보건상에 해악이 초래될 수 있다[1]. 따라서 BL 알레르기가 의심되는 증상 혹은 징후를 경험한 환자에서 BL 알레르기의 유무 및 원인 약물의 정확한 진단은 의약품안전에 필수적이다. BL 알레르기는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마찬가지로 투약력을 포함한 병력 이외에 체외시험, 피부시험, 약물유발시험 등을 필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여 진단한다[3].
BL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발생 원인, 기전, 항원결정기, BL 항생제 간의 교차반응 등에 대한 다양하고 심도 있는 선행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시대 및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처방 패턴, 처방 빈도 등은 물론 의료보험제도에도 밀접한 영향을 받는 실제 임상 경험은 개별 약물에 대한 보고들 혹은 전체 약물이상반응 보고 중 일부로 제한되어 보고되어 있다. BL 항생제가 포함된 약물들과 관련된 약물이상반응을 경험한 환자들에서 BL 알레르기의 임상 양상을 연구하여 BL 알레르기의 임상적 특성을 알아보고자 본 연구를 시행하였다.
대상 및 방법
본 연구는 최근 5년간 지역기반의 한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에서 하나 이상의 BL 항생제를 포함한 약물들에 의해 약물이상반응이 의심되는 증상 및 징후를 경험한 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연구대상자의 인구통계학 정보, 증상 및 징후, 투여된 약물의 성분 정보 및 투여 경로, BL 알레르기의 진단적 검사, BL 알레르기 확진 유무 및 최종 확인된 원인 약물 등을 의무기록을 통해 후향적으로 조사하였다. 본 연구는 제주대학교병원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승인을 받았다(IRB No. 2019-12-004).
“즉시형”은 약물 투여 후 1시간 이내에 증상 및 징후가 나타난 것으로 정의하였다. 피부시험은 BL 항생제를 이용한 피부단자시험과 피내반응시험 중 한 가지 이상을 시행한 경우로 정의하였다. 아나필락시스는 두 가지 이상의 신체계통에서 수분 또는 수시간 내에 급성 증상 및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로 정의하였다[4]. 이전 약물 알레르기 병력은 연구대상자가 BL 항생제 외 다른 약물에 대한 약물이상반응을 확진받은 병력이 있는 경우로 정의하였다.
결 과
연구대상자는 2014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총 175명이었다. 연구대상자의 평균 나이는 44 ± 18세(범위: 1-90세)이고, 여성이 94명(53.7%)이었다. 연구대상자의 절반 이상(92명, 52.6%)은 약물이상반응을 처음 경험하였다. 약물이상반응이 발생한 시점에 BL 항생제를 포함하여 투여되었던 약물의 성분 정보는 165명(94.3%)에서 상세히 조사되었다.
연구대상자 중 병력과 약물조사만으로 BL 알레르기가 확진된 사례는 단 2건(1.1%)에 불과하였다. 전체 연구대상자 중 167명(95.4%)에게 BL 항생제 특이 IgE 항체 검사(Pencilloyl G, Pencilloyl V, and Cefaclor, ImmunoCAP, Phadia AB, Uppsala, Sweden)가 시행되었고, 36명(21.6%)에서 하나 이상의 BL 항생제 특이 IgE 항체가 검출되었다. 36명 중 26명에서 Cefaclor 특이 IgE 항체가 검출되었고, 7명에서 penicilloyl V, 6명에서 penicilloyl G 특이 IgE 항체가 검출되었다. Cefaclor 특이 IgE 항체 양성인 4명에서 penicilloyl 특이 IgE 항체가 중복 검출되었다. 연구대상자 중 33명(18.9%)에서 병력 및 특이 IgE 항체 검사로 원인 약물을 확정하였다. BL 항생제를 이용한 피부시험은 연구대상자 중 59명(33.7%)에서 시행되었으며, 이 중 32명(54.2%)에서 하나 이상의 BL 항생제에 대해 양성을 보였다. 피부시험을 통해 BL 알레르기가 확진된 사례는 29명(16.6%)이었다. 경구 혹은 비경구 약물유발시험은 40명(22.9%)에서 시행되었으며, 약물유발시험 양성 소견으로 15명(37.5%)에서 해당 BL 항생제를 원인 약물로 확정하였다.
연구대상자 중 BL 알레르기가 확진된 79명(45.1%)의 평균 나이는 49 ± 14세였고, 여성이 42명(53.2%)이었다. 2명(2.5%)은 병력 및 약물조사에 의해서, 33명(41.8%)은 특이 IgE 항체검출, 29명(36.7%)은 피부시험으로, 15명(19.0%)은 약물유발검사로 BL 항생제를 원인 약물로 확인하였다(Fig. 1).
약물 투약 시점에서 증상 또는 징후가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은 BL 알레르기 환자들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투약 시점에서 30분 이내 나타난 BL 알레르기 환자는 45명(57.0%), 30분 이상 1시간 이내 16명(20.3%), 1시간 이상 24시간 이내 7명(8.9%), 24시간 이후 4명(5.1%)이었다. 즉시형 약물이상반응을 보인 경우는 모두 61명(77.2%)이었다.
BL 알레르기 환자들의 증상 또는 징후로 가려움증(53명, 67.1%)이 가장 흔하였으며, 두드러기(48명, 60.8%), 피부 발적(40명, 50.6%), 호흡곤란(35명, 44.3%), 혈관부종(22명, 27.8%), 저혈압(15명, 19.0%) 등이 나타났다. 신경학적 증상은 22명(27.8%)에서 나타났고, 위장관 증상은 10명(12.7%)에서 동반되었다. 코 막힘, 쉰 목소리, 기침, 발열, 물집, 하지 부종 등도 드물게 발생하였다. 아나필락시스는 50명(63.3%)에서 발생하였으며, 응급실을 방문하였던 환자는 40명(50.6%)이었다.
BL 알레르기 환자 중 5가지 성분 이상의 경구 약제를 투여 받은 경우가 21명(26.6%)이었으며, 4가지는 10명(12.7%), 3가지는 17명(21.5%), 2가지 이하를 투여 받은 경우는 18명(22.8%)이었다. 16명(20.3%)은 경구 약물과 함께 비경구 약물들도 함께 투여 받았다(Table 1).
BL 알레르기의 원인 약물로는 세파클러(33명, 41.8%)가 가장 흔하였으며, 아목시실린 화합물(36.7%), 세파졸린(5.1%), 세푸록심(3.8%), 암피실린, 세프라딘, 세프트리악손(각 2.5%), 세프카펜, 세포독심, 세프타조돈, 세프디토렌(각 1.3%) 순이었다. 아나필락시스의 발생 사례는 세파클러(24명, 72.7%)에서 가장 많았으며, 아목시실린(17명, 58.6%), 세파졸린(3명, 75.0%) 등의 순이었다(Fig. 2).
연구대상자 중 약물유발 검사를 이용해 BL 알레르기가 배제된 환자는 43명(24.6%)이었고, 나머지 53명(30.3%)에서는 임상 경과를 추적하지 못하거나 추가 검사를 시행하지 못해 원인 약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BL 이외의 원인 약물로는 소염진통제(21명)가 가장 흔하였으며, 퀴놀론(2명), 파상풍톡소이드(1명) 등이 확인되었다. 19명(10.9%)에서는 모든 의심약물을 이용하여 약물유발 검사를 시행하였으나, 증상 및 징후가 재현되지 않아 투여된 약물에서 원인 약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 찰
BL 항생제에 의한 약물이상반응은 연구대상의 0.7%에서 10%까지 다양한 빈도로 보고되는 비교적 흔한 약물 알레르기다[2,5]. 과거에는 페니실린이 가장 흔한 원인 약물이었으나, 최근 유럽의 알레르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아목시실린이 BL 알레르기의 흔한 원인 약물이었다[6]. 본 연구에서는 BL 알레르기의 가장 흔한 원인 약물은 세파클러였으며, 아목시실린 화합물이 그 뒤를 이었다.
본 연구는 제주도 내 유일의 대학병원에 개설된 약물 알레르기 클리닉에서 시행되었다. 수 년간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지정 지역의약품안전센터를 운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 다양한 기관에서 약물 알레르기 의심 환자들을 의뢰 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 철저한 병력 및 투여 약물 조사만으로 원인 약물이 확진된 경우가 드물었던 이유는 연구대상자 중 다수가 본 연구기관 외에서 발생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BL 항생제를 포함한 약물 투여 후 약물 알레르기 의심 증상 또는 징후가 발생한 환자 중 진단을 위한 검사의 필요성을 간과하여 추적 관찰이 불가능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 이는 BL 알레르기 진단 및 원인 약물을 밝힐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지역의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유발 검사까지 시행하였으나 약물 알레르기 진단은 물론 원인 약물을 확인하지 못한 사례도 드물게 있었는데, 약물이상반응으로 의심되었던 증상 및 징후가 기저 질환에 의한 것이었는지 불완전한 병력 및 투여 약물 조사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약물 알레르기는 원인 약물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의약품 안전카드 등을 통한 고지가 필수적이다. BL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에서 정확한 원인 약물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거나 부정확한 경우(mis-labeling)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그리고 공중보건상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1,7]. 직접적인 이유로는 감염병에 대한 항생제를 선택할 때 BL 항생제보다 높은 비용, 낮은 효능, 투여 기간의 증가 및 부작용 가능성이 높은 다른 대안을 고려하기 때문이다[1,5]. 반면, 이전 BL 알레르기라고 진단받았던 환자들의 90%에서 실제 해당 약물을 이용한 피부시험 및 유발 검사로 해당 BL 알레르기가 배제(de-labeling)되었다는 보고도 있다[7]. 피부시험 및 유발시험은 BL 알레르기를 배제하는 데 유용하고 적절한 항생제 선택에 도움이 되며, 의료비 절감에 기여한다[8,9].
BL 알레르기의 진단 및 원인 약물 확정을 위해서 정확한 약물 투약력을 포함한 병력, 체외시험, 피부시험, 약물유발시험 등이 순차적으로 필요하다[3]. 특정 약물에 노출 시 반복되는 증상 및 징후를 경험한 경우에는 철저한 약물조사 및 병력만으로 원인 약물의 추론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대부분 다성분 약물을 동시 투약 후 증상 및 징후가 발생하였기에 병력만으로 원인 약물의 확정이 어려워 대부분 추가 검사 및 유발검사를 통해 BL 알레르기가 진단되었다.
약물에 대한 특이 IgE 항체를 검출하는 체외시험은 임상적 연관성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안전하기에 BL 알레르기 진단에 흔히 사용된다[5]. 약물 또는 성분에 대한 특이 IgE 혈청 검사는 낮은 민감도를 보이지만, 높은 특이성을 나타내기에 BL 항생제를 포함한 다성분 투약 사례에서 BL 항생제 특이 IgE 항체를 검출하면 원인 약물 확정에 도움이 되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약물유발 검사를 피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ImmunoCAP 검사를 이용한 페니실로G, 페니실로V 및 세파클러 등에 대한 상업적 특이 IgE 항체의 검출이 가능하다. BL 항생제를 이용한 호염기구 활성화 검사는 향후 유용한 체외 검사로 기대되나, 상업적 임상적용을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5,10].
BL 알레르기는 약물 투여 후 1시간 이내에 증상 또는 징후가 흔히 즉시형으로 나타나고 피부점막계 침범이 흔하므로 BL 항생제를 이용한 피부시험이 진단에 유용하다. 과거에는 BL 알레르기 진단을 위해 항원결정기 시약이 피부시험에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국내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시약이 적절히 공급되지 않는다[3]. 페니실린 자체 혹은 합성 페니실린을 이용한 피부시험은 페니실린 알레르기 진단에 높은 신뢰도를 보이지만, 그 외 대부분 BL 항생제의 경우 피부시험의 유용성이나 표준화된 피부시험 농도 등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11]. 약물을 이용한 피부첩포시험은 비즉시형 BL 알레르기에 시도해 볼 수 있으나 낮은 민감도로 임상적 유용성은 높지 않다[12].
의심 약물을 해당 환자에게 직접 투약해보는 약물유발시험은 BL 알레르기를 확진 혹은 배제하기 위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진단법이다[1,3,13]. BL 항생제를 직접 경구 혹은 비경구 투여하는 유발시험은 증상 혹은 징후가 생명을 위협하지 않은 경우, 성인뿐만 아니라 소아에서도 약물 알레르기 타입과 관계없이 시행 가능하다.
BL 항생제 간의 유사한 화학구조로 인한 교차반응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임상적으로 중요하다[14]. 교차반응 가능성으로 인해 특정 BL 항생제가 원인 약물로 확진된 경우에도 회피약물을 고지하거나 의약품안전카드 발급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1세대 세팔로스포린에 대한 교차반응률은 2.5-8.7%로 대부분 화학구조적 유사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2, 3세대 세팔로스포린의 경우 교차반응률은 임상적으로 간과해도 될 정도로 낮다고 알려져 있다[15].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BL 알레르기에서 아나필락시스가 흔히 발생하고, 주요 원인 약물은 세파클러와 아목시실린 등이다. 본 연구대상에는 본 연구기관 외에 발생한 사례가 많아 중증 전신반응 환자가 많이 의뢰되었을 선택 편견의 결과임을 배제할 수 없다. 본 연구는 후향적 임상연구이므로 이와 같은 결과가 BL 항생제의 지역적 처방 빈도 및 처방 패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해당 약물의 특성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다. BL 항생제의 지역적 처방빈도를 고려한 전향적 연구를 통해서만이 아나필락시스의 위험인자를 도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킨 BL 항생제 알레르기에 대한 전국 규모의 전향적 연구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