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의 다른 이름, 비대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s on Untact Healthcare, Another Name for Telemedicine
Article information
서 론
높은 전염성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rona virus disease 19, COVID-19)로 인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언택트(untact) 시대'가 열렸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쇼핑 등 '비대면' 양식이 대세가 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원격의료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경제지를 비롯한 주요 언론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들이 원격의료의 전망과 청사진을 내세워 전면 도입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2월 말, 대구와 경북에서 COVID-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가 전화 상담과 처방을 허용하자 본격적으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계는 물론,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에서도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와 여당은 원격의료(진료) 대신 '비대면의료(진료)'로 용어를 정리하고 전면적인 원격의료의 허용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또한 이러한 비대면의료 서비스는 COVID-19 위기에서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나중에는 노인이나 거동불편자, 의료취약지 거주자를 대상으로 하여 초진이 아닌 재진에 한하여,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 질환 진료로 제한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에 대해서는 1차 의료기관 중심의 비대면의료 서비스를 통하여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비대면의료 서비스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따라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세부적인 조건을 정함으로써 모델을 한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 수개월이 이러한 디테일이 없는, 백가쟁명 식의 '뜬구름의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비대면의료 서비스의 조건을 구체화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 합리적인 수순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순하고 실현 가능해 보이는 모델 속에도 비대면 의료의 근본적인 한계와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비대면의료 서비스와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또한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수단이 전화나 화상통화를 이용하여 먼 거리에 있는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것, 즉 원격 통신기술이므로 이를 원격의료로 통일하여 부르기로 한다.
본 론
사각지대야 말로 직접 진찰이 필요한 곳이다
의사를 자주 만나기 어려운 노인이나 거동불편자, 취약지 거주자는 장기간의 잘못된 습관이나 낮은 위생 상태 등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질병에 복합적으로 이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젊고 거동에 지장이 없으며, 의료기관 이용이 쉬운 환자와 달리 직접 호소하는 증상뿐만 아니라 환자의 외양이나 움직임을 통해 의사가 짐작하거나 필요하면 환자에게 동작을 지시하고 옷을 벗겨 몸을 확인하는 식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찾아내는 의사의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요구된다. 또한 의사소통이 정확히 이루어지기 어렵거나 효율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실제 의사와의 만남이다. 누구보다도 대면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 진료하는 왕진 제도를 활성화하거나 혹은 공공차원에서 의료기관 방문을 돕는 보조 인력이나 이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재진에 대한 고찰
원격의료 찬성 측의 주장은 첫 진료, 즉 초진에서 의사가 환자의 문제와 과거력, 특이사항 등의 정보를 파악하고 필요한 진찰을 마침으로써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이후부터는 전화나 화상 전송을 통하여 진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 한 번의 진료만으로 환자를 다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치 한 번 만났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여러 번의 진료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혹은 처음에 이야기하였던 정보가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노인이나 장애가 있는 환자, 만성 질환자의 경우는 더욱 단 한 번의 진료만으로 모든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원격 의료가 가능한 환자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의사의 환자에 대한 이해도에 달려 있으므로 의사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하며, 단순히 재진이라고 해서 환자가 요구하는 대로 진료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면진료와 비교하여 원격을 통한 진료가 가지는 여러 한계와 불완전성에 대한 전제 하에 의사와 환자가 상호 간의 신뢰를 가지고 진료에 임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off-line)에서의 라뽀(rapport) 형성은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라뽀는 단순하게 한두 번의 진료로 형성되지 않는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비록 오랫동안 같은 문제로 진료받은 환자라 하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여 시행하는 진료는 사실상 초진의 성격을 갖는다. 또, 같은 문제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내원한 환자의 진료 역시 초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제 현장에서는 ‘초진 같은 재진’이 많다. 이와 관련한 진료비 산정 기준도 매우 어지럽다. ‘치료가 종결되지 않으면 재진’, ‘치료 종결 여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90일 내에 다시 내원하면 재진’, ‘치료가 종결되었다가 다시 내원하거나 또는 새로운 증상으로 내원하더라도 이전 진료로부터 30일 이내면 재진’ 등 여러 기준이 혼재되어 있어 진료를 하는 의사도, 진료를 받는 환자도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현재 원격의료의 주된 대상으로 논의되는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의 경우, 치료가 종결될 수 없는 질병의 특성상 초진 이후부터는 내원 간격에 상관 없이 재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건강보험공단의 입장이다. 예컨대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던 환자가 치료를 자의로 중단하거나 다른 사정으로 인하여 10년 만에 내원하더라도 초진이 아니라 재진이라는 것이다.
또, 만성 질환으로 치료 중 전혀 무관한 다른 증상이 나타나 이에 대하여 진료를 받는 경우에도, 진찰 시 만성 질환에 대해 진료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만성 질환에 대한 치료가 종결된 것은 아니며, 진찰은 기존의 질환 상태를 감안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만성 질환에 대한 처방 등이 없었다 하더라도 재진으로 본다. 예를 들면 당뇨로 치료 중인 환자가 갑자기 생긴 기침과 가래로 진료를 받더라도 재진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불합리한 초·재진 산정기준이 개선되지 않는 한, 원격의료를 ‘재진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단순하게 한 번 대면진료를 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재진으로 제한하자는 취지조차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약만 먹는 병인가?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이용한 국내 연구[1]에 따르면 당뇨병으로 치료받고 있던 환자 4만 3,283명의 당화혈색소 검사 빈도를 조사하였더니 1년 동안 1회 이상 받은 경우가 67%였다. 특히 권고사항에 따라 1년에 4회 이상 검사한 경우는 6.1%에 불과하였다. 100명 가운데 6명만이 제대로 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전국 251개 시·군·구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농촌 인구가 많고 섬이 포함된 지역일수록 검사 시행률이 낮았다.
많은 만성 질환 환자들이 스스로 수 년 넘게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정작 왜 약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관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약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의학적 문제의 난이도, 시간과 노력의 투입, 상담과 교육에 대한 가치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아 의사는 빠르게 처방하는 데 집중하고 환자는 그 결과물인 처방전을 받는 데 집중하는 시스템은 만성 질환 관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환자가 그저 약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검사나 교육의 중요성은 무시하기 일쑤다. ‘야전병원’ 식 진료, 즉 ‘속도전’의 치명적 약점인 셈이다.
만성 질환을 원격의료의 대상으로 하자는 주장 역시 만성 질환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의 산물이다. 원격의료를 통한 만성 질환 관리는 의사가 환자의 상담과 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환자가 질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치료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치료가 가능할 때에 비로소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시행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제도와 인식 수준에서는 그저 ‘원격 처방전 신속 발급 시스템’으로 이용될 뿐이다. 자신의 병에 대한 이해가 깊고 치료 순응도가 높은, 잘 관리되고 있는 만성 질환자가 아니라면 대상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농촌이나 섬과 같은 취약지일수록 만성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의료전달체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원격의료 찬성론자들은 원격의료를 통해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며 의료전달체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정부 역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1차 의료기관 중심의 원격의료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다.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과 의료비용의 통제라는 공익을 위해 국민 개인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의료전달체계의 본질인데 정부가 이 ‘불편한 진실’을 차마 국민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분노와 질타를 감수하고 설득하여 동의를 얻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생략한 채 공급자의 행태만 제한하는 소극적인 정책으로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수 없으며 원격의료를 통해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도 헛된 상상에 불과하다.
결 론
60대의 노인인 A씨를 가정해보자.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도서 취약지에 살고 있으며, 장애로 거동이 불편하다. 1년에 한번 정도 날을 잡아 육지로 나와 힘들게 병원에 방문하여 혈압, 당뇨 진료를 받는다. 병원에 온 김에 겸사겸사 허리가 아플 때 먹는 진통소염제와 속 쓰리면 먹을 위장약도 처방을 요청한다. 감기에 걸리면 먹을 해열제와 진해거담제도 부탁한다. 검사 받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며 혈액, 소변 검사와 단순흉부촬영, 위내시경 검사 등을 권유하는 의사의 제안은 “나중에 하겠다”며 거절한다. 한숨을 쉬며 처방을 내는 의사는 “검사를 권유하였으나 거부. 다음에 하겠다고 약만 달라고 함. 증상 악화 시 즉시 내원하여 검사 하시도록 설명드림.”과 같은 방어적인 의무기록을 남길 것이다.
A씨야 말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원격의료에 적격인 대상이며 이 정책을 가장 환영할 만한 환자다. 더 이상 힘들게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오지 않아도 되며 어렵게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에 찾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원격 조제와 약 배송과 같은 편의까지 제공된다면 약까지도 편하게 집에서 받아 볼 수 있게 된다. 단지 환자의 만족감과 편의만 생각한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것이 적절한 시스템일까? 눈앞에서 직접 의사가 권유를 해도 거절하는 환자가 과연 전화나 화상통화에 설득될 수 있을까? 전화 너머로 “알았으니 일단 처방전부터 보내 달라”는 환자에게 ‘약이라도 먹게 하는 것’ 외에 과연 의사가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진료는 의사와 환자의 만남이다. 이것은 단순히 의학이라는 지식과 증상이라는 현상의 만남이 아니다. 의학을 배운 사람과 증상을 가진 사람이 만나는 사람 대 사람의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사람의 특성이나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환자를 직접 만나는 의사가 아니라면 이러한 진료의 특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를, 정부와 산업계가 아니라 임상의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