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최초 발견된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모든 분야에서 바이러스 감염 방지와 격리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비대면(언택트) 서비스가 뉴 노멀(new normal)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 19 대유행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감염원으로부터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감염 예방 추진 방안’을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 가벼운 감기 환자, 만성 질환자 등에 대해 전화 상담, 전화 처방, 대리 처방, 화상진료 등 비대면 의료 시행을 적극 활용, 2)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한 경우, 의료기관 내 별도 공간에서 의료인 보조 하에 의료기관 본 건물 내 의사와 화상으로 진료.
이와 함께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비대면 의료를 정규 의료서비스로 편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비대면 의료(용어 ‘비대면 의료’는 현 정부에서 코로나 19 발생 이후 사용하게 된 용어로서 정식 법적 용어가 아니고 내용상으로도 의료법 제34조에 명시되어 있는 ‘원격의료’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논의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비대면 의료’이므로 본고에서도 용어 ‘원격의료’, ‘telehealth’를 모두 ‘비대면 의료’와 동일한 개념의 용어로 간주하여 사용함)가 비교적 활발하게 활용되어 왔던 미국에서는 코로나 19 대유행 상황이 발생하자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비대면 진료에 공공 의료보험을 지원하는 법안을 연방의회에서 통과시켰고, 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CMS)에서도 이에 관련한 수가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으며, 비상사태 이후 최장 180일 동안까지는 의료 제공자가 어느 주의 환자이든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평등간호접근법(equal access to care act)을 상원의회에 제출하는 등 비대면 의료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국가에서 이와 유사하게 의료계를 중심으로 비대면 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계를 중심으로 슬기로운 비대면 의료 도입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본 론
비대면 의료 정의
현재 비대면 의료를 뜻하는 ‘원격의료’는 의료법 제34조에서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1]. 환자나 일반인이 아닌 의료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비대면 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대면 의료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미국 보건자원서비스청(Health Resources and Services Administration, HRSA)에서는 비대면 의료(telehealth)를 “먼 거리 소재 의료기관, 환자, 의료 공급자를 대상으로 건강 관련 교육, 공공보건, 건강관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전자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는 것(use of electronic information and telecommunication technologies to support long-distance clinical healthcare, patient and professional health-related education, public health, and health administration)”으로 정의하고 있다[2]. 유럽, 호주, 일본 등 비대면 의료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에서의 비대면 의료에 대한 정의는 이와 유사하며, 모두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의료인-환자 가족 간 비대면 의료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비대면 의료의 목적
미국, 호주와 같이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에서 비도시 지역의 의료접근성을 향상시키고 부족한 의료인력을 대체할 목적으로 비대면 의료를 도입한 이후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기술의 발달로 보다 진전되고 확장된 의료서비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추진되고 있다.
비대면 의료의 종류
2013년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 간 비대면 의료를 추진하기 위해 마련한 “원격의료추진방안”에서 원격의료의 종류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1) 원격진료 - 의료인이 대면진료를 대체하여 원격으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방전 발행 등 진료, 2) 원격모니터링 - 의료인이 환자의 질병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담·교육 등 관리, 3) 원격자문 - 원격지 의사가 멀리 떨어진 의료인의 의료 과정에 대해 지식이나 기술 자문.
비대면 의료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비대면 의료를 공식적으로는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1) Live video conferencing - 의사-환자 간 영상과 음성이 모두 지원되는 정보 통신매체를 활용하여 실시간 건강상담하는 방식(Fig. 1) [3]. 2) Store-and-forward - 실시간 또는 시차를 두고 환자의 생체 정보를 모니터링, 건강 상담을 녹화한 정보 등을 의료인의 전자진료교류시스템에 보내는 방식(Fig. 2) [4]. 3) Remote patient monitoring - 환자의 생체 정보, 이미지 등 환자 데이터를 의료인 정보시스템에 전송하여 기록하는 방식(Fig. 3) [5]. 4) 모바일 헬스 -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1-3)의 서비스 및 진료예약, 진료비 지불 등의 부가서비스 제공(Fig. 4) [6].
각 국의 비대면 의료 관련 정책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에서 질환의 효과적 관리, 의료비용 절감, 의료접근성 개선 등 다양한 목적 달성을 위해 비대면 의료를 부가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독일
독일은 2015년 이전까지는 의약품법 상 비대면 의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였으나, 2015년 e헬스법이 통과되면서 의료의 디지털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2018년 이후 비대면 의료 금지를 전제로 하였던 여러 법과 규정을 정비하여 헬스케어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처방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의료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2019년에는 의사가 당뇨병 모니터링 및 관리 등 건강 관리 기능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처방을 허용하는 법안(digital healthcare act [Digitale-Versorgung-Gesetz])을 통과시킨 바있다. 연방의약품의료기기연구원(Bundesinstitut für Arzneimittel und Medizinprodukte)에서 애플리케이션의 품질과 안정성에 대해서 검사 받도록 하였으며, 공적의료보험(GKV-Spitzenverband)에서 헬스 케어 애플리케이션이 수가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개정한 규정 초안(Digitale-Gesundheitsanwendungen-Verordnung, DiGAV)을 마련하는 등 비대면 의료를 수용성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
영국은 보건의료 분야의 예산 절감과 서비스 효율화를 위하여 2016년 7월 NHS Digital을 설립하여 보건의료 분야의 디지털화와 비대면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의료서비스의 효율화를 위하여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NHS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바빌론 헬스(Babylon health)가 대표적이다. 바빌론 헬스는 스마트폰 기반 AI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채팅을 통한 상담은 물론 GP와의 예약 및 진료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진료 이후에는 처방 의약품의 배송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호주
2001년 호주 정부는 뉴질랜드와 함께 국가 비대면 의료 계획(National Telehealth Plan for Australia and New Zealand)을 발표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비대면 의료를 장려하기 위해 텔레 헬스 재정지원 프로그램(telehealth financial incentive program) 등과 같은 비대면 의료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호주에서 비대면 의료는 일반 진료 서비스와 동일하게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보안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주마다 비대면 의료 실시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호주 정부에서는 코로나 19 이후에도 비대면 의료를 통해 일반의와 정신건강의학 관련 상담을 제공받을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주요국의 코로나 19 이후 비대면 의료 관련 정책 동향 관련 글로벌 설문 결과
최근 의사 커뮤니티 플랫폼 제공 사이트 Sermo [7]에서 발표한 비대면 의료 실시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 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코로나 19 이후 방문 진료(in-person visit) 환자수는 대폭 감소한 대신 비대면 의료를 통해서 환자수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4월 3일부터 4월 14일까지 비대면 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일본, 스위스 등 9개 국가의 의사 1,392명에게 코로나 19 이후 비대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 19 이후 환자들이 급감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미국에서는 81%의 의사가 환자수가 감소하였다고 응답하였으며, 다른 8개 국가에서는 48%의 의사가 환자수가 감소하였다고 응답하였다(Fig. 5) [7]. 진료과별로는 피부과 환자 감소율이 74%로 가장 높았으며, 일반 진료 및 내과 환자의 감소율도 50%가 넘는 것으로 응답하였다(Fig. 6) [7].
코로나 19 발생 후 확진자 발생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비대면 의료서비스 이용 환자의 비율이 94%에 달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조사 대상 국가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의 의료서비스 이용 방법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우선 고려한다고 볼 수 있어서 의료서비스에서의 언택트 방식에 대한 서비스 모델, 프로토콜, 진료의 질 등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Fig. 7) [7].
미국
미국 내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의료정보경영학회(Healthcare Information and Management Systems Society)와 미국 원격의료협회(American Telemedicine Association, ATA)는 2월 말에 미국 정부 및 국회에 비대면 의료서비스 적용 범위 확대를 요청하였으며, 미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규정 완화를 통한 비대면 의료서비스 확대 방향을 발표하였다.
미국 보건부는 비대면 의료서비스 제공 시 적용하고 있던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규정을 일시적으로 완화하여 페이스 타임, Skype 등의 SNS 애플리케이션을 비대면 의료서비스에 사용 가능하도록 허용하였으며, 서비스 제공자는 오디오 청취만으로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medicare 및 medicaid를 관장하는 CMS는 medicare, medicaid, 아동건강보험프로그램에서 기존에 허용하던 비대면 의료 외에 추가적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통해 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 가능하도록 허용하였다. 특히 medicare는 3월 6일부터 환자 거주지를 포함한 확대된 공간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이외에 기존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통한 진료가 가능하던 질병 외에 initial observation care, acute nursing facility care 등 80개 항목에 대한 보험급여를 추가적으로 허용하였다[8].
영국
영국은 코로나 19 발생 이전까지는 비대면 의료서비스 제공 비율은 높지 않아, 영국 일반의 중 1% 미만에 그칠 정도로 미미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영국 역시 자국 내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일반의들에게 비대면 의료서비스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9].
NHS England는 일반의들에게 예약된 환자들의 진료를 전화 또는 화상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NHS의 일차 진료 책임자 역시 비대면 의료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것으로 권고하였다. 현재 그 사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6개월 간 화상 시스템을 사용한 양을 추적한 결과, 최근 2주 동안 1,000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조사되었다[10]. 이처럼 영국에서는 코로나 19 이후 일반의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1차 의료에서의 비대면 의료서비스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일본
일본은 올해 4월 10일부터 온라인·전화 진료, 온라인·전화 등을 통한 복약지도 등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고시를 발표하였다. 또한 기존에는 허용하지 않던 초진을 허용하고 대상 질환 범위도 넓혔으며, 의약품 택배 배송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생노동성 홈페이지를 통해, 각 지자체별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기관 현황을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이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11].
국내 시범사업에서의 비대면 의료 효과 실증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의료취약지역에서의 의료영상 판독 능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과 연천보건소 간 진행된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을 효시로 하여 30년 넘게 시범사업으로서 비대면 의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기술성에 초점을 맞추어 시범사업을 진행하여 왔으며, 의료 측면에서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2010년 스마트케어 시범사업 때 처음으로 평가지표로 제시되었다(2010년 스마트케어시범사업 이후 각 시범사업별 실시 목적에 따른 평가지표를 개발하여 진행하였으나, 본고에서는 비대면 의료의 임상적 효과성에 대한 분석 결과가 포함된 스마트케어서비스 시범사업과 복합 만성 질환 원격모니터링 서비스 시범사업에 대해서만 나타내었다).
스마트케어서비스 시범사업(2010-2013년) (Fig. 8) [12]
• 서비스 유형: 원격모니터링, 원격진료
• 주요 참여자: 의사(원격지), 환자(현지), 스마트케어센터
• 참여 인원: 약 3,400여 명의 고혈압, 당뇨병, 대사증후군 환자
• 주요 특징: 의사와 환자 사이에 스마트케어센터가 위치하여 환자의 생체정보를 1차 모니터링하며, 환자에게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기관과의 진료/상담 서비스를 연계해주었다.
• 주요 결과: 당뇨병 환자들의 경우 대조군 대비 시험군의 HbA1c 평균 변화량이 6개월 0.31%, 12개월 0.34% 감소하여, 혈당 조절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대조군 대비 시험군의 목표 혈압 도달율이 높았다. 대사증후군 환자의 경우 체중 감소 효과가 높고, 체질량지수, 허리둘레 등 비만 지표 감소폭이 대조군에 비하여 시험군이 크게 나타났다[12].
복합 만성 질환 원격모니터링 서비스 시범사업(2015년)
(Fig. 9)
• 서비스 유형: 원격모니터링
• 주요 참여자: 의사(원격지), 환자(현지)
• 참여 인원: 시험군 150명, 대조군 97명 등 복합 만성 질환자(당뇨병을 중심으로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중 1개 이상의 질환을 동반으로 상병하고 있는 자) 247명
• 주요 특징: 1차 의료기관 중심의 원격모니터링 서비스 시범사업이었으며, 임상시험에 준하는 시험군-대조군 연구로 설계하여 임상적 유효성, 유용성 등을 분석하였다.
• 주요 결과: 시험군이 대조군에 비하여 HbA1c가 0.36% 더 감소하였으며, 공복혈당의 경우, 시험군이 18.86 mg/dL, 대조군이 2.33 mg/dL 감소하였다. 유용성 측면에서 분석한 복약순응도의 경우, 동기 항목에서 시험군 0.39점, 대조군 0.04점 증가하여 시험군의 증가폭이 컸다. 치료만족도에서 DTSQs가 기저시점 대비 3개월 시점 평균 변화량 시험군 2.19 ± 6.14 (점), 대조군은 0.35 ± 5.98 (점)이 각각 증가하였다. DTSQc의 경우 시험군 13.95 ± 5.09 (점), 대조군 10.79 ± 6.48 (점)로 조사되었다[13].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임상적 효과에 대한 체계적 문헌 고찰 결과
비대면 의료 서비스 유형 중 비대면으로 만성 질환자를 관찰·상담·교육하는 ‘원격모니터링’의 임상적 효과를 확인하고자 고혈압, 당뇨,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 결과를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그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14].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연구 대상은 원격모니터링 중재로 무작위 배정 비교 임상시험을 시행한 문헌이며, 선택 문헌은 총 102편으로 질환별로 고혈압 20편(19.6%), 제2형 당뇨병 44편(43.1%), 심부전 38편(37.3%)이고, 연구 국가별로 한국 12편(11.8%), 미국 51편(50%), 기타 국가 39편(38.2%)이다. 주요 결과로는 고혈압, 당뇨병, 심부전 환자 모두 원격모니터링 중재를 받은 환자군이 원격모니터링 중재를 받지 않은 환자군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임상적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원격모니터링 중재군에서 고혈압 환자는 수축기 혈압이 4.7 mmHg, 이완기 혈압이 1.9 mmHg이 더 낮고, 당뇨병 환자는 당화혈색소가 0.4%p가량 더 낮고, 심부전 환자는 전체 사망 위험이 18% 더 낮게 나타났다. 이 결과에 대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는 “원격모니터링 중재법은 진료의 대체나 고혈압·당뇨병·심부전의 치료제로서의 기능이 아닌, 대면진료의 보조적 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해석을 내린 바 있다.
비대면 의료 도입 의사 결정 시 고려사항
데이터 기반 의료
임상적인 의사 결정에 있어서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고 이를 의사들의 경험과 통합하여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은 1990년대 초 의학계에 소개된 이후 의료인이 지녀야 하는 지식과 기술로 인식되어 왔다[15]. 의사들은 PubMed, Cochrane Library, KoreaMed 등과 같은 의학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메타분석 방식으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의 일관성을 모든 의사가 동일하게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고, 임상 현장에서 개별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즉시 활용하기 어려운 제한점이 존재한다. 이에 근래 들어 ICT 기술의 발전으로 개별 환자의 데이터에 근거하려는 데이터 중심 의료(data-driven Medicine), 즉, 디지털 헬스(digital health)가 기존의 근거 중심 의학에 더해지거나 대체해 가는 추세에 있다.
비대면 의료 또한 데이터 중심 의료의 한 범주에 속하므로 비대면 의료서비스 모형을 설계할 때에는 반드시 해당 특정 환자 개인에게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의 상태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고, 그 분석 결과로서 환자 맞춤형 최적화된 치료법 또는 질병관리법을 찾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서비스 모형이 개발되어야 한다.
비대면 환경에서의 기술성
의사가 환자의 유병 여부를 확인하는 진찰 시 보통 오진(五診)-문진(問診), 시진(視診), 청진(聽診), 촉진(觸診), 타진(打診)-으로 진찰을 하게 되는데, 의사가 대면 진료를 통해 생성한 데이터를 비대면 의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수집할 수 있어야 의사들의 오진(誤診)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후통과 고열 증상이 있는 환자를 비대면 의료로 진료한다면, 비대면 의료 상황에서 목, 코, 귀 안의 염증이 발생하였는지 확인할 때 다기능 카메라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염증 부위, 정도, 병변의 크기 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화상 선명도가 확보되어야 하고, 빛 번짐 현상에 의한 이미지 손실이 없어야 의사가 시진에 의한 진단이 가능하다.
비대면 의료의 효과성 평가
비대면 의료는 환자 정보 수집과 수집된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의료진이 환자 데이터를 분석하여 치료 또는 질병 관리 방법을 찾아내는 절차와 방식에서 기존 대면 의료와 차이가 있을 뿐 약물, 수술, 재활 등의 기존 치료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다. 따라서 비대면 의료의 효과성 평가는 기존 치료 효과와의 동등성 또는 우월성을 1차 평가지표로 채택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기존 대면 의료의 결과에 더하여 해당 환자에 대해 어떠한 깊이 있는(in-depth) 통찰력(insight)을 도출하였고, 이를 위해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 서비스 모형을 개발하여 의료제공자와 환자 개인에게 어떤 가치를 창출하였는가를 비대면 의료의 효과로 평가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예를 들어 2016년 발표된 미국 Stanford 대학병원의 제1형 소아 당뇨 환자에 대한 의료 ICT 시스템 활용 연구의 경우, 최소 침습 연속혈당기로 측정된 혈당 데이터와 환자의 라이프로그가 병원의 EHR 서버 내 진료 정보와 통합되어 담당 의료진이 통합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아 당뇨 환자의 환경에 적합한 질병관리법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였다(Fig. 11) [17]. 이 연구에서 원격모니터링 시스템이 환자의 간헐적 저혈당 발생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insight를 찾아내는 데 효과적인지를 효과성 평가의 척도로 두고 있다. 이 연구 결과로 소아 당뇨 환자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여 생성된 데이터의 통합적 분석을 통해 적정한 인슐린 주사 시간과 인슐린 주사량을 찾아냄으로써 저혈당 쇼크 발생 빈도를 낮출 수 있었다[17].
의미 있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 모형 개발과 의료전문가의 적극적 참여
앞서의 Stanford 대학의 연구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비대면 의료가 도입되어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면 의료 서비스 프로세스에 비대면 의료의 서비스 프로세스를 추가한 서비스 모형을 개발하여 프로토콜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호주 등에서는 비대면 의료 실시 지침(telehealth practice guideline), 임상지침(telehealth clinical guideline) 등 다수의 지침서를 의료인이 중심이 되어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대면 의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을 중심으로 질환별 또는 질환 그룹별 비대면 의료 서비스 모형을 개발하고 서비스 프로세스, 사용 장비, 데이터 분석 방법, 효과의 제한성, 평가지표 설정, 평가 방법 등을 담아 비대면 의료 실시 지침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비대면 의료 서비스 모형에 대해 다양한 임상 연구를 시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미국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 제공 사이트인 ClinicalTrial.gov 조사 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과 국립 의학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Medicine)에서 운영하는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 ‘Clinicaltrials.gov’에 등록된 미국 내·외 비대면 의료서비스 관련 임상시험 현황을 분석한 결과(chronic disease [chronic illness, chronic disorders, chronic condition 포함], telehealth [telemedicine, eHealth 포함] 검색어로 DB검색. 2019년 10월 31일 기준), 총 143건의 임상시험이 검색되었다. 이 중 종료된 68건에 대한 분석 결과 총 30개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이 중 만성 폐쇄성 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에 대한 연구가 2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당뇨병 12건, 만성 신장 질환 9건, 만성 심부전 8건, 고혈압 7건의 순이었으며, 기타 질환으로는 외상후스트 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과체중, 비만, 낙상, 물리치료 등 다양한 비대면 의료 서비스 모형에 대한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Fig. 12).
비대면 의료 거버넌스
비대면 의료가 활발히 진행 중인 국가에서는 책임기관이 지정되어 있고, 각 이해당사자(stakeholder)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거버넌스가 구축되어 있다. 비대면 의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중심 추진기관과 각 이해당사자의 역할이 명료하게 배분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비대면 의료 이해당사자는 비대면 의료 세부 모형별 프로토콜 및 운영지침 개발, 비대면 의료 기술 상담 및 지원, 비대면 의료 기술평가 및 인증, 비대면 의료에 대한 의료인 대상 교육 훈련, 비대면 의료 세부 서비스 모형별 수가지원 방안 개발 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HRSA에서 12개의 지역 Telehealth Resource Center (TRCs)와 2개의 국가 National Telehealth Resource Center (NTRCs)를 운영하고 있다. 2개의 NTRC 중 한 센터는 비대면 의료의 정책, 법률, 수가보상 등에 관한 정책 마련을 담당하는 National Telehealth Policy Resource Center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에 관한 표준, 기술성 평가, 보안성 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National Telehealth Technology Assessment Resource Center (TTAC)이다. 특히, TTAC에서는 비대면의료 툴킷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 비대면 의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이러한 거버넌스 구축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결 론
비대면 의료는 의료서비스의 전달 방식이 보다 다양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며, 데이터에 근거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외 비대면 의료의 장점을 살펴 보았을 때 보건의료기관 및 의료진 측면에서는, 1)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 및 제공할 수 있어서 의료기관을 안전하게 격리하면서도 환자 수 감소 최소화; 2)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어서 환자 맞춤형 건강 관리 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며, 향상된 의료정보시스템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의료서비스 질 제고; 3) ‘주치의’ 또는 ‘단골 의사’ 개념 형성으로 1, 2차 의료기관이 예방 의료의 중심 역할을 수행; 4)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 정책하에서는 수가산정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경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비대면 의료 도입으로 기존 의료서비스에 고부가가치를 더하여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저수가 문제해결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므로 보건의료인의 활동에 대한 가치 입증 등과 같은 장점이 있다. 국가의 측면에서도 1) 의료자원과 의료공급량이 부족한 의료취약지역 내 의료접근성 향상 및 제고; 2) 의료취약계층인 고령자와 이동 불편 장애인 등의 비대면 진료를 통해 질적인 건강 관리가 가능해짐으로써 의료취약계층 의료복지 실현; 3) 비대면 의료가 성공적으로 도입이 되면 질병 예방의 효과로 이어져서 인당 급여 지불액이 감소됨에 따라 건강보험재정 건전성 확보 가능 등과 같은 장점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이와 유사한 바이러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의료기관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환자와 의료진 양측을 바이러스 감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면서 안정적으로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한적이지만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시적 허용에 따른 서비스 제공은 의료진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을 하지 못함에 따라 그 역할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의료진이 양질의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재의 비대면 의료 제공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가 정식적인 서비스로 운영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현재 의료법 제34조 제1항에서 ‘원격의료’를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이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 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원격의료는 국민과 의료인이 인식하는 의료행위 또는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법률 정의 상 원격의료는 의료행위 및 의료서비스로 볼 수 없으므로 ‘의료’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대면 의료를 시행하려 하여도 또는 시행하지 않는다 하여도 현재의 의료법 제34조 ‘원격의료’에 관한 조항은 유명무실할 뿐 아니라 어떠한 정책적 방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조항이므로 삭제함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