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료 전달체계 개편 방향
Improvement Plan of Healthcare Delivery System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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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의료 전달체계는 제한된 보건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국민이 건강하도록 의료서비스 제공 절차와 내용을 체계화하는 제도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의료 전달체계 성립을 의료의 지역화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로 정의하고 지역화의 요건으로 진료권의 설정, 필요한 의료자원의 공급, 의료기관 간 기능의 분담과 연계 및 환자 이송 및 의뢰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부터 의료 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1989년에 전국적인 규모의 환자의뢰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는데, 전국을 행정구역과 생활권에 따라 진료권을 설정하고 의료기관 역시 1차, 2차 및 3차 의료기관으로 분류하여 의료기관 간의 기능을 역할 분담하게 하였다. 그러나 1998년에 이 제도는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개혁 차원에서 진료권의 개념이 폐지되면서 의료법에 근간을 둔 의료 전달체계는 폐지되었다[1,2]. 이후 의료기관의 기능에 맞는 의료 제공 및 이용체계가 확립되지 않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계속 몰리게 되었고, 지역 간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2019년 9월 4일 상급 종합병원 환자 집중 해소를 위한 의료 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마련하여 발표하였다. 이에 정부에서 지난 해 제안하였던 합리적 의료 이용과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의료 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의 주요 내용과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내과의사가 이에 대비하고 제안할 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 론
의료 전달체계는 환자가 적정 의료서비스를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체계로, 의료 이용체계와 제공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의료 제공에 대해서는 의료법령 등에서 의료기관의 종류를 상급 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과 의원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표준 업무를 규정하고 권장 질환을 예시하고 있다. 의료 이용 측면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하고 있는데, 요양급여를 이용할 때 1단계와 2단계로 나누어 요양급여를 받도록 하고 있다. 1단계는 의료법상에 규정하는 상급 종합병원을 제외한 요양기관에서 받은 요양급여를 말하고, 2단계는 상급 종합병원에서 받는 요양급여를 의미한다(Table 1) [2]. 최근에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하고 의료기관 간 경쟁이 심화되는 이유는 의료법에 의료 제공 체계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고,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간을 둔 요양급여 이용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는 의료 전달체계가 정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의료 전달체계를 잘 정립하면 환자 중심으로 의료의 질과 조정을 향상시키고 환자의 비용 부담을 적정하게 통제하며 의료접근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건의료 환경과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추어 환자 중심 의료 이용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과 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의료 전달체계의 현황 및 문제점
지난 10년간 의료 제공 및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급 종합병원 중심으로 의료 이용이 증가하였는데 상급 종합병원의 고유기능과 맞지 않는 외래 경증진료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중증 및 경증 환자 모두 안전하고 적정한 진료를 보장받기가 어렵고 의료자원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기관 종류별 진료비 점유율은 의원급은 37.5%에서 31.4%로 감소한 반면 상급 종합병원은 24.6%에서 27.7%로 증가하였다(Table 2). 의료기관별 외래일수 점유율은 상급 종합병원이 4.1%에서 5.6%로 증가하고 의원은 81.3%에서 75.6%로 감소하였다. 입원일수 점유율 역시 상급 종합병원이 14.9%에서 16.7%로 증가하는 동안 의원은 13.8%에서 7.7%로 감소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의료기관별 외래 내원일수 증가율은 전체가 22%인데 상급 종합병원은 66%, 의원은 14%로 증가하였고, 외래일수와 입원일수를 포함한 의료 이용량도 상급 종합병원이 타 종별에 비해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Table 3) [3].
의료 이용에 대한 제한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환자들의 대부분은 규모가 크고 유명한 의사와 고가장비를 보유한 상급 종합병원을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보장성 강화정책에 따라 상급 종합병원 이용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고 상급 종합병원 이용을 위한 별도의 진료 의뢰 비용이 없어 접근성이 더 크게 증가하였고, 실손보험 가입 증가로 인해 본인부담금이 사실상 없거나 매우 적은 경우도 많아 상급 종합병원의 쏠림 현상은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급 종합병원 진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경우 장기간 대기하면서 치료 적기를 놓칠 가능성이 커지고, 수술까지 통상 2-3개월 대기를 하고 평균 진찰시간은 4분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만성 질환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포괄적이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나 대형병원에서 장기처방 중심으로 진료하게 되면서 치료 효과는 오히려 저하되었다.
의료 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
지난 10년간 심화되어 온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의료 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세우고 이를 발표하였다[3]. 이 대책의 목적은 환자들이 적정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는 데 있다. 경증 환자는 가까운 병·의원에서 신속하게 치료하고 중증 환자는 상급 종합병원에서 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한다. 의료기관 별로 각 기능에 맞는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하기 위해서 의원에서는 주로 만성 질환에 대한 포괄적 건강 관리와 간단한 외과적 수술, 처치를 시행하고 병원 및 종합병원에서는 일반적 입원 수술과 전문 진료를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고도 중증 및 희귀 질환에 대한 치료, 교육 및 연구를 담당하게 하고 지역 내에서 의료 수요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구체적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하도록 평가와 보상 체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상급 종합병원 지정기준 중 중증 환자 비율을 상향하고 경증환자 비율을 하향하는 것을 예고하여 이미 시행 중이고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에는 의료질 수가를 적용하지 않고 종별 가산율을 인하하는 한편, 중증 환자 수가와 중환자실 수가를 인상할 예정이다. 중증 심층 진료 위 주로 운영 시 별도 수가체계를 적용할 예정이고, 최종적으로 상급 종합병원이라는 명칭을 중증 종합병원으로 변경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둘째, 병·의원에서 상급 종합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는 과정을 개선하여 적정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도록 하고, 환자가 선택하지 않고 의사가 판단하여 적정 의료기관으로 직접 의뢰할 때에는 예약까지 종합적으로 지원 할 것이다. 상급 종합병원 의뢰 시에는 종이 의뢰서가 아닌 의뢰 회송시스템을 이용하게 하고, 별도의 의뢰수가를 지원하고 시스템 의뢰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하게 하여 중·장기적으로 종이의뢰서를 폐지하거나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의뢰를 통해 상급 종합병원,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의료기관으로 의뢰가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려고 하고 있다. 셋째, 상급 종합병원에서 경증 환자 및 중증 환자들의 급성기 치료가 끝난 후에 지역 병·의원으로 회송하는 과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회송된 이후에도 후속 진료를 보장하고 상급 종합병원 진료협력센터에서 회송 환자 사후 관리를 추진할 예정이다. 넷째, 환자들의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으로 실손보험 보장 내용이 건강보험 급여 지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보장 범위 조정을 검토하고, 실손보험 보장 내용이 바람직한 의료 이용 및 공급체계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도록 공·사보험 연계체계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상급 종합병원에서 경증 외래 환자가 치료하는 경우 환자가 직접 지불해야하는 본인 부담률을 단계적으로 인상할 것이다. 상급 종합병원 이용 시 의뢰서가 없어도 건강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예외 경로가 있었는데 이 역시 재검토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내에서 의료 해결 역량을 제고하고 환자들이 믿고 치료할 수 있는 지역의 역량 있는 종합병원을 지역우수병원으로 지정하여 전문병원 및 1차 의료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한다. 연구를 거쳐 지정 및 운영 기준을 마련하여 시범적으로 지정하고,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해소성과 등에 따라 추후 제도화하면서 보상 방안 등과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다. 또한 특정 과목이나 질환에 대한 전문 의료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문병원 지정평가제도를 내실화하고, 지역 1차 의료 기능 강화를 위해 1차 의료기관 만성 질환 관리 사업 및 의원급 교육상담 시범사업 등도 지속 확대한다. 아울러 지역에서 필수 의료(중증 및 응급환자, 심뇌혈관 질환 진료)가 적절히 제공될 수 있도록 지역 단위 필수의료 협력과 연계의 구심점으로 지역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여 지역 의료자원을 연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개선 방안
정부의 단기대책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주로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강화하는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존 제공 서비스에 환자교육, 건강증진 및 예방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1차 의료기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래 환자 본인 부담률을 30%에서 10%로 점진적으로 인하하고 환자 관리 비용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건강 증진 관리료를 신설하여 동네의사가 지역주민 대상으로 건강의 유지 증진을 위한 건강 관리계획 수립, 중간 관리 등 상담하고 관리해주도록 하는데, 이는 건강보험재정이 아닌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하였다. 1차 의료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1차 의료기관 전담 부서를 설립하고 1차 의료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였다. 일부 시행 중인 만성 질환 관리 시범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중소병원 역량 강화에는 찬성하나 정부가 제안한 지역 우수병원 지정은 반대하고 지역 중소병원을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라고 하였다. 상급 종합병원을 중증 종합병원으로 지정하고 의료 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취지에는 동의하나 반드시 1차 의료기관을 거쳐 2차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전달체계 개편을 제안하였다. 의료기관 종별 가산을 진료 기능 가산으로 전환하여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고, 이에 소요되는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것을 요구하였다. 정부의 대책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외과계 의원 수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부분과 외과계 의원을 대상으로 외래 진찰료 이외에 환자 관리료 등 추가 수가 신설을 요청한 점이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부, 심사평가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개원의협의회가 모두 참여하는 의료 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여 단기 대책을 보완하고 중·장기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였다[4].
결 론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구성하는 보건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관리함으로써 전체 국민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은 그 국가의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많은 선진 국가들이 의료 전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보건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으로 국민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2]. 최근 정부에서 의료 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하였고, 이 대책들이 2020년 상반기 중 시행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고 있다. 또한 단기 대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 기능별 역할 재정립, 협력의료체계 강화, 국민과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를 제고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한 중·장기 대책도 마련할 예정이다[5]. 최근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단기 대책에 대응하여 의료 전달체계개선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내과의사들이 의료 전달체계 개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책 수립과정에 있어 관심과 참여가 부족하였다. 앞으로 단기대책의 시행과 중·장기 대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