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의료기술의 발달과 수명의 연장으로 암의 발생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중복암 또는 다중암의 발병률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미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다른 암의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령으로 갈수록 증가한다. 원발성 중복암 또는 다중암은 1889년 Billroth가 처음으로 동일 환자에게서 2개 이상의 다른 조직학적 특성을 보이는 다발성 원발성 악성 종양을 보고한 이후 1932년 Warren과 Gates [1]는 다발성 원발성 악성 종양의 진단기준으로 1) 각 종양은 병리조직학적으로 악성으로 증명될 것, 2) 각 종양은 조직학적으로 서로 다른 종양이고 두 종양 사이에는 적어도 2 cm의 정상 점막이 존재할 것, 3) 다른 종양으로의 전이의 가능성은 최대한 배제될 것의 새로운 진단기준을 제시하였다. 두경부암, 혹은 폐암과 식도암을 포함한 위장관계에서의 다중암 발생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 장기들의 상피세포가 흡연이나 알코올 같은 공통 발암 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이들 부위에 다발성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Slaughter 등[2]이 제시한 field cancerization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식도암에서 이중암의 보고는 적지 않으나 삼중복암 이상의 보고는 매우 드물어 저자는 최근 경험한 식도, 두경부, 간에서 이시성으로 발생한 사중복암 1예를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2008년 5월, 68세 남자가 연하곤란으로 소화기내과를 방문하였다. 30년간 매일 소주 1-2병의 음주, 30년간 하루 1/3갑의 흡연력이 있는 농부로, 암의 가족력은 없었고 과거력상 2004년 9월 다른 병원에서 알코올성 간경화로 진단 후 동반된 복수, 식도 정맥류와 간성 혼수로 입원하여 치료한 이후 연고지 관계로 2005년 5월 20일 본원으로 전원되어 약 한 달간의 유지요법 후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2008년 3월경부터 발생한 목의 이물감과 고형식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으로 다시 본원 소화기내과 외래를 방문하였다. 활력 징후는 정상이었으며, 이학적 검사상 특이 사항은 없었고, 식도위내시경 검사상 전치에서 21-24 cm에 걸쳐 반월형 종양이 관찰되어 이 병변에 대한 조직검사를 실시하였다. 조직검사 결과, 간질 침범이 있는 잘 분화된 편평상피암이 확인되었다(Fig. 1). 식도 조영술에서는 인두식도 경계 부위의 약 1.8 cm 하방에서부터 약 4.5 cm 길이의 일부 궤양을 동반한 윤상 병변이 관찰되었고, positron emission tomography-computed tomography (PET/CT) 검사에서는 상부에서 중부 식도에 이르는 장경 약 4.8 cm 길이의 과대사 병변(SUVmax 14.5)이 관찰되었으며, 그 외 특이 소견은 없었다(Fig. 1). 환자는 cT2N0M0의 상부 식도암 진단으로 2008년 6월 4일부터 약 6주간 근치목적의 동시 항암화학방사선요법을 시행하여 2008년 7월 18일까지 총 5,400 cGy/30 fractions의 방사선 치료와 5 FU/CDDP 6차(last cycle 2008.9.23.)의 항암화학요법을 종료하였다.
마지막 항암화학요법 시행 후 2012년 7월까지의 정기 추적 검사에서 완전 관해를 보였으며, 이후 추적 관찰이 되지 않다가 2014년 10월, 6개월 전부터 목에서 가래가 넘어오는 느낌과 잇몸이 불어나는 느낌 그리고 소량의 혈담을 주소로 다른 병원을 방문하여 시행한 검사상 편도암으로 조직검사상 중등도 분화도를 가진 편평상피암으로 진단되었고, 동시화학방사선요법을 위해 본원으로 전원되었다. 내원 당시 시행한 구강인두 CT 검사에서 좌측 구개편도에 장경 3 cm 크기의 조영이 잘되는 소엽상 종괴가 관찰되었고, 인근 좌설기저부까지 침범한 소견을 보였으며 림프절 침범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Fig. 1). PET/CT 검사에서는 좌측 편도에 소엽상의 과대사 병변(SUVmax 30.5)과 좌측 level II에 SUVmax 2.6의 경미한 과대사 병변이 관찰되었다. 2014년 11월 10일부터 근치적 목적으로 33회에 걸쳐 총 6,600 cGy의 세기조절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으로 cetuximab을 시작하여 8차까지 진행하였으며, 12월 31일 치료를 종료하였다.
치료 도중 간경화에 대한 정기적 추적 검사로 시행한 혈액 검사 결과 leukocyte count 4,820/μL, hemoglobin 15.0 g/dL, platelet 209,000/μL, serum sodium 144 mEq/L, serum potassium 4.1 mEq/L, SGOT 17 IU/L, SGPT 5 IU/L, total protein 6.3 g/dL, albumin 3.6 g/dL, alkaline phosphatase 100 IU/L, total bilirubin 0.96 mg/dL, γ-GTP 77 IU/L (N; 8-61 IU/L), BUN/Cr 15.0/0.91 mg/dL, αFP 5.4 ng/mL (N; 0-10 ng/mL), PIVKA II 14 mAU/mL (N; 0-40 mAU/mL), HBs antigen negative, HBs antibody negative, anti-HCV antibody negative 소견을 보여 뚜렷한 간기능 저하 등의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러나 3-phase dynamic CT와 dynamic MR liver에서 간 실질과 비교하여 동맥기에서 조영증강을, 문맥기와 정맥기에서 조영 지연 감소를 보여 전형적인 간세포암의 특성을 보이는 간의 dome 위치에서 직경 1.5cm의 간의 종괴가 발견되어 소화기내과에서 혈관조영술을 시행, S8 분획에 단일결절 형태의 과혈관성 종괴 염색이 확인되어 원발성 간암에 합당한 소견을 보여 2015년 1월 TACE를 시행하였다(Fig. 1). 이후 시행한 추적 PET/CT 검사에서 편도암은 소실되었으나 좌측 neck level II에서 국소적인 과대사 병변(SUVmax 15.5)이 발견되어 림프절 재발 의심 하에 2015년 5월 26일 좌측 변형적 경부곽청술을 시행하였고, 조직학적 검사 결과 1개의 림프절에서 전이성 편평상피암이 발견되었으나 환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였다. 2015년 9월 25일 시행한 추적 검사에서 우측 협점막에 궤양성 병변이 관찰되어 조직검사를 실시하여 잘 분화된 편평상피암으로, 면역조직화학염색에서 p53 음성, p63 양성 그리고 Ki-67 labelling index 양성 등의 소견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환자는 2008년 식도암 진단 이후 이시성으로 발생한 네 번째 악성 종양까지 진단받게 되었고, 10월 22일 국소 절제술을 시행하였다(Fig. 2).
2016년 2월 시행한 PET/CT 검사에서 두경부에 재발 소견없이 우폐중엽에 불규칙한 과대사 병변(SUVmax 7.6)이 발견되어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 전이성 편평상피암으로 진단되었으며, 고식적 목적의 화학요법으로 docetaxel/cisplatin을 두차례 시행하였고, 병변 크기의 증가와 치료로 인한 독성으로 치료를 중단 후 TS-1/CDDP로 약제를 변경하여 치료를 진행하여 더 이상의 진행 없이 안정 병변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이후 시행한 간 MRI에서 간 종괴의 단일성 국소 재발 소견이 관찰되어 두 번째 TACE를 시행하였으며 현재 외래 경과 관찰 중에 있다.
고 찰
원발성 다중암은 1989년 Billorth가 최초 보고한 이래로 여러 증례보고와 연구가 있었는데, 1977년 Moertel 등은 원발성 다중암을 I군은 조직학적으로 동일한 장기에서 발생한 중복암, II군은 서로 상이한 조직에서 발생한 중복암 그리고 III군은 삼중복암 이상으로 좀 더 세분화하여 구분하였다. 본증례의 경우 Moertel의 기준에 따른 분류에 따르면 III군에 해당한다.
다중암의 발생 기전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인종, 유전적 요인, 흡연이나 음주 등 환경적 요인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Slaughter 등[2]이 담배나 술 등의 발암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호흡기 및 소화기의 상피세포 전체가 각각 독립적으로 암세포의 전 단계나 암세포의 단계에 있다가 악성 종양으로 발현한다는 field cancerization의 개념을 제시한 이후 최근에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가 일부 두경부암이나 식도암의 발병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들이 있는데 미국암협회 코호트 연구에 등록된 96,650명의 구강샘플을 분석한 Agalliu등[3]의 메타분석에서 3.9년의 추적 기간 동안 두경부의 편평상피암으로 진단된 132명을 대상으로 차세대 서열 분석방법으로 DNA α-, β-, γ-HPV types를 분석한 결과 HPV 16형이 발현된 경우 두경부암, 특히 구인두암 발병률이 대조군에 비해 22.4배 높았음을 보고하였고, 식도암의 경우에도 메타 분석 등 여러 연구에서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식도암의 발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본 증례의 경우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하지 못하였다[4].
다중암은 진단 시기에 따라 동시성과 이시성으로 구분한다. 보고에 따라 2개월 혹은 6개월로 진단기준의 차이가 있으나, 통상적으로 원발암 발견 후 6개월 이내에 속발성 암이 발견되는 경우를 동시성으로, 6개월 이후에 발견되는 경우를 이시성 다중암으로 구분한 Fried의 분류를 따른다.
다중암 발생 빈도의 증가는 PET-CT 등 영상의학 기술의 발달로 조기 발견의 기회가 증가되었고, 치료 후 생존 기간의 연장으로 인하여 이시성 원발암의 발견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환자의 통계가 축적되면서 많은 증례가 나타나게 된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9,87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다중암의 발병률을 보고한 Cheng 등[5]에 의하면 246명(2.5%)에서 다중암이 발견되었으며, 이 중 약 절반 이상인 129명에서 소화기계 악성 종양이 동반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중복암이 12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삼중복암이 9명, 사중복암은 없었다. 국내의 경우 0.26-7.1%의 다중암 발생 빈도를 보이고 있는데, 사중복암의 경우는 Kim 등[6]에 의해 비소세포 폐암, 식도암 및 성문암, 설암 그리고 Bae 등[7]에 의해 직장, 결장, 위, 바터 팽대부의 이시성 원발암이 보고된 바 있다. 본 증례의 경우 식도, 편도, 간, 협점막에 발생한 이시성 사중 복암에 대한 보고로, 식도 및 두경부 암 이외에 간에 동시 발생한 이시성 중복암의 예는 보고된 바 없어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식도암 환자에서 다발성 원발암이 발생할 확률은 여러 연구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1.8-27%로 알려져 있는데, 가장 최근의 대규모 다기관 연구인 Chuang 등[8]이 13개 암센터에 식도암으로 등록된 환자 52,58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959명에서 중복암이 발생하여 1.8%의 발생 빈도를 보였고, 이 중 편평상피암이 604명(63%)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식도암 환자는 진단을 위하여 식도위내시경이 필수이며, 시행과정에서 구강이나 구인두, 하인두, 후두 그리고 위를 직접 관찰할 수 있어 특히 동시성으로 발생한 일부 두경부암이나 위암의 발견 가능성이 있다. 식도암에 병발된 원발성 중복암의 발생 부위는 보고마다 다양한데, Poon 등[9]의 연구에서는 두경부가 8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이어서 대장, 폐, 위, 방광, 유방 등의 순서로 나타났으며, 본 증례의 경우에서 보인 간에서의 중복암 발생은 없었다. 식도를 상부와 중부 그리고 하부로 구분하였을 때 각 부위에 따른 중복암의 발생률은 중부 식도암에서 가장 높았으며, 가장 많은 중복암 발생 부위인 두경부에서는 하인두암, 후두암, 설암, 구강저개부암, 구개암, 구인두암, 부비동암의 순으로 나타났다. 본 증례의 경우, 상부식도에서 원발암이 발생하였고, 이시성 중복암이 두경부의 구인두(좌측 편도, 우측 협점막)에서 발생하여 이는 매우 드문 경우로 생각된다. 1,294명의 식도의 편평상피암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 Fékété 등[10]의 연구에서 39명에서 원발성 폐암이 동반되었는데, 이들은 원발성 폐암과 전이성 폐암의 감별 진단기준을 폐암이 식도암보다 먼저 존재할 것, 폐암이 조직학적으로 편평상피암이 아닐 것, 또는 폐암이 편평상피암이지만 기관지 내에 고립성으로 존재할 경우를 원발성 폐암으로 진단할 것을 제시하였다. 본 증례의 경우, 원발암의 정기적 추적 검사에서 이시성으로 발견된 폐의 단일 결절이 조직학적 검사 결과 원발암과 같은 편평상피암으로 나타났으나 우폐중엽의 폐실질 내에 위치하여 위의 진단기준에 근거한다면 원발성 폐암보다는 전이성 병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본 증례의 경우, 식도에 처음 발생한 편평상피암이 장기간 국소 재발이나 인근 림프절 침범 없이 완전 관해를 보였고, 이시성으로 발생한 두경부의 좌측 편도암과 우측 협점막암은 조직학적으로 같은 편평상피암으로 나타났지만, Warren과 Gates의 분류[1]에 따라 서로 정반대의 상이한 위치에 존재하며, 원발암 진단 6년 이후에 발생한 점 등을 종합하여 식도암의 전이보다는 각각 이시성 원발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추적 기간 중 발견된 간의 결절은 환자가 간경화 병력이 있는 고위험군이고, 단일 병소이며 dynamic CT와 MRI에서 동맥기 조영증강과 문맥기와 정맥기 지연 감소를 보인 점 그리고 편평상피암이 간으로 전이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 등의 소견으로 대한 간학회의 진료 권고안에 따라 간세포암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진단하여 치료를 진행하였다.
원발성 중복암의 치료 원칙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동시성 중복암의 경우에는 환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암부터 우선적인 치료를 시행하며, 하나의 암이 발견되어 근치적 치료 후 다른 암이 발생하는 이시성의 경우에는 각각 별도의 암으로 취급하여 치료하며 근치적 치료가 필요한데 환자의 전신 상태나 암의 종류 그리고 치료에 대한 반응도를 고려하여 치료 순서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 증례의 경우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 2008년 처음으로 식도에서의 원발암 진단 및 근치적 치료 후 이시성으로 발생한 암에 대한 근치적 치료를 시행하였다.
중복암의 예후는 원발 부위나 암의 종류, 중복암의 발생 간격 등에 달라지며 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암 발생 환자에게서 다른 암의 발생률은 일반인의 암 발생률에 비해 높고, 중복암이 단일암이 전이된 경우에 비해 더 나은 생존율을 보이며, 일부 보고에서는 속발성 암에 대한 진단이 빠를수록 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일차암이 발생한 암 환자에서 세심한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 또한 본 증례와 같이 예후가 불량하다고 알려져 있는 식도암에서도 장기 생존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보다 지속적인 관찰과 중복암의 발생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최근 국내에서 거의 보고된 적이 없는 식도암의 이시성 사중복암을 경험하였기에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