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자가면역 췌장염은 자가면역 기전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췌장염의 일종이다. 2002년에 국내에 첫 보고가 있었는데[1] 그 전에는 이 질환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자가면역 췌장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해서였다고 추정된다. 지난 10년 동안 이 질환에 대한 국내 보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또 관련 지식도 많이 향상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국소적으로 종괴를 형성하는 자가면역 췌장염의 경우 췌장암과의 감별이 매우 어려워서 개복 수술을 통해 췌장을 절제한 후에야 진단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가면역 췌장염은 약물 치료가 주된 치료 방법으로 스테로이드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고 췌장암과 달리 개복술 혹은 췌장 절제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2]. 하지만 췌장암과 감별이 어려워서 일본에서 자가면역 췌장염 환자의 약 20%에서 췌장암 및 담관암으로 오인하여 수술하였다는 보고가 있으며[3] 미국에서는 췌십이지장 절제의 약 2.5% 정도가 자가면역 췌장염을 췌장암으로 오인하여 시행되었다는 보고가 있다[2].
한편 2주간의 경구 스테로이드 요법이 종괴 형성 자가면역 췌장염과 췌장암의 감별 진단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었다[4]. 이에 저자들은 진단 소견에서 췌장 종괴가 발견되어 내원한 환자에서 2주간의 경구 스테로이드 투여로 자가면역 췌장염과 췌장암을 감별하고 그 후 추가적인 스테로이드 투여로 자가면역 췌장염으로 확진할 수 있었던 1예를 경험하였기에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환자: 69세, 남자
주소: 다른 병원 검사에서 췌장 체부의 종괴가 발견되어 내원함.
현병력: 6년 전 명치 부위의 답답한 느낌이 지속되어 다른 병원에서 복부 CT을 시행하였는데, 췌장이 전반적으로 종대되었고 췌장 주변의 염증 침윤은 동반하지 않았으며(Fig. 1A) 자기공명 담도췌관조영술(magnetic resonance cholangiopancreatography, MRCP)에서 췌관 확장을 동반하지 않는 주췌관의 긴 협착이 관찰되었다(Fig. 1B). 당시 혈청 IgG4는 측정되지 않았다. 생검 소견도 자가면역 췌장염에 합당하였으며 경구 스테로이드를 2년 4개월 동안 투약 후 관해되어 중단하였다. 스테로이드 중단 6개월 후, 3개월간 10 kg의 체중 감량으로 다시 같은 병원을 방문하여 복부 CT를 시행하였다. 당시 소견은 췌장의 체부와 미부가 위축되어 있었고 주췌관이 확장되었으며 양측 신장에 다발성의 연부조직 음영이 있었고, 하부 복부대동맥 주변을 감싸는 후복막 섬유화가 관찰되었다. 자가면역 췌장염 재발 소견으로 판단하여 경구 스테로이드를 2년 9개월 동안 투약 후 관해되어 다시 중단하였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투약 중단 4개월 후 시행한 복부 CT에서 췌장 체부의 종괴가 발견되었고 외부 병원에서는 췌장암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개복수술을 권하였다. 이에 환자는 췌장 종괴에 대한 치료 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본원에 내원하였다.
내원 당시 증상은 없는 상태였고 6년 전 진단된 당뇨병에 대해 경구 혈당 강하제 투약 중으로, 혈당은 잘 조절되고 있었으며 이외에 다른 병력은 없었다. 과거 40갑년의 흡연력이 있으며, 평소 1주일에 소주 2잔 정도 마시는 음주력이 있었다.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고 신체 검진에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검사실 소견: 일반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5,800/mm3, 혈색소 15.5 g/dL, 혈소판 264,000/mm3으로 정상이었다. AST(aspartate aminotransferase) 24 IU/L, ALT (alanine aminotransferase) 15 IU/L, ALP (alkaline phosphatase) 85 IU/L, γ-GT(γ-glutamyltranspeptidase) 32 IU/L, 총 단백 7.5 g/dL, 알부민 3.9 g/dL, 총 빌리루빈 0.6 mg/dL, 직접 빌리루빈 0.1 mg/dL, 아밀라아제 141 U/L, 리파아제 107 U/L으로 정상이었다. 혈 중 CEA (carcinoembryonic antigen) 1.4 ng/mL, CA (carbohydrate antigen) 19-9 15.7 U/mL로 정상이었다. 항핵항체(ANA) titer 1:40 미만, 류마티스 인자(rheumatoid factor, RF) 10.6 IU/mL 미만으로 정상이었고 혈청 IgG 2,030 mg/dL (정상범위: 700-1,600 mg/dL)로 상승 소견을 보였으나 IgG4는 36 mg/dL (정상범위: 6.1-121.4 mg/dL)로 정상이었다.
영상 진단 소견: 내원 당시 시행한 복부 CT에서 췌장 체부에 장경 21 mm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저음영의 국소형 종괴를 형성하는 병변이 있었고 그 상류쪽 주췌관의 현저한 확장과 췌실질의 위축이 동반되었다(Fig. 2A).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에서도 해당 부위 췌장 종괴의 SUV (standardized uptake value)는 2.2로 대사 활성도가 증가되었다(Fig. 2B).
조직 검사: 초음파 내시경 유도하에 22G 굵기의 미세침을 이용하여 췌장 체부의 저에코음영에 대해 생검을 시행하였다. 조직 검사 결과, 만성 염증 소견을 보였으며 종양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고 IgG4 양성 형질세포의 침윤도 관찰되지 않았다.
치료 및 경과: 매일 경구 prednisolone 30 mg과 azathioprine 100 mg을 2주 동안 투약한 후, 복부 CT를 통해 반응을 평가하였다. 췌장 체부의 종괴는 장경 21 mm에서 16 mm로 감소하였으며 상류 쪽 주췌관의 확장도 호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Fig. 3A), 췌장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었다. 경구 스테로이드와 azathioprine을 같은 용량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한 후, 2달 째 시행한 복부 CT에서 이전에 보이던 췌장 체부의 종괴는 장경 13 mm로 현저히 감소하였고 상류 쪽 췌관의 확장은 거의 소실되었다(Fig. 3B). 이에 자가면역 췌장염으로 확진할 수 있었다.
고 찰
2주간의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종괴 형성 자가면역 췌장염과 췌장암을 감별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치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유병률로 보면 췌장암이 자가면역 췌장염보다 훨씬 흔한 질환이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조직 검사를 통한 췌장암의 배제가 필수적이다[2]. 가능하면 초음파 내시경 검사를 통한 세포진 검사가 추천되는데, 이때 비록 조직 검사에서 암 세포가 관찰되지 않았어도 췌장암에 대해 위음성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2주간 스테로이드 복용 후 반드시 추적 영상 검사를 통해 종괴의 크기가 현저히 감소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여기에 반응이 없다면 반드시 개복 수술을 통해 확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4]. 2주간으로 투여 기간을 한정하는 이유는 첫째, 만약 해당 환자가 자가면역 췌장염이라면 2주간의 스테로이드 투여로서 현저한 호전이 관찰되기 때문이며 둘째, 일반적으로 2주 정도의 스테로이드 투여는 부신 피질 기능에 큰 영향이 없어 스테로이드를 필요하면 즉시 완전히 중단할 수 있으며[5] 마지막으로 췌장암은 워낙 빨리 진행하는 악성 종양이기 때문에 너무 오래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다가 수술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4].
이번 환자의 경우 6년 전의 첫 진단이 자가면역 췌장염이라는 것은 특징적인 영상 진단 소견과 임상경과로 보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본원에 내원했을 때 영상 소견상 췌장 종괴 상류쪽 주췌관의 현저한 확장과 췌실질 감소가 동반된 것이다. 이는 자가면역 췌장염의 특징적 소견이 아니며 오히려 췌장암에 매우 가까운 영상 소견이기 때문에 외부 대학 병원에서 개복 수술을 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또한 고려해야 할 점은 자가면역 췌장염 환자에서 췌장암이 동시에 병발한 경우와 자가면역 췌장염을 진단 받은 후 경과 중에 췌장암이 발견된 경우가 각각 보고되었다는 점이다[6-8]. 자가면역 췌장염과 췌장암의 인과 관계는 아직 확실치않지만 어쨌든 자가면역 췌장염 환자에서는 췌장암의 발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환자를 본원에서 개복 수술을 시행하지 않고 췌장 조직 검사를 시행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스테로이드를 투여하게 된 이론적 배경은 과거 이 환자가 자가 면역 췌장염을 앓은 병력이 확실하며 그 동안의 임상경과를 볼 때 이 질환의 회복, 재발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자가 면역 췌장염도 여러 번 재발하게 되면 나중에는 일반 만성 췌장염과 같은 영상 소견(췌장 실질 감소, 췌관 확장, 췌석 형성 등)을 보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9]. 그리고 해당 환자는 내원 시 췌장암에서 나타나는 동반 증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가면역 췌장염과 췌장암의 감별 목적으로, 2주간의 스테로이드 복용을 시작할 때에는 해당 환자가 췌장암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하는 거꾸로 말해서 자가면역 췌장염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상당한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4]. 즉, 임상적으로 심한 복통과 같은 급성 췌장염 증상이 뚜렷하지 않으면서 췌장 전체가 퉁퉁 부은 가운데 췌장 종괴가 존재하는 경우, 종괴가 제법 크지만 상류쪽 주췌관의 확장이 미미한 경우, 췌관 조영술상 주췌관 전반이 가늘어져 있으면서 찌글찌글한 경우, 혈중 IgG4가 현저히 증가한 경우, 침샘이나 후복막, 신장 등에 동반된 병변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자가면역 췌장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2].
이번 환자의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와 함께 azathioprine을 투여하였지만 azathioprine은 최대 효과가 나타나려면 복용 후 수 개월 이상이 경과해야 하므로[10] 약물 복용 후 2주째 시행한 영상 소견의 호전에는 azathioprine이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최근 azathioprine이 재발한 자가 면역 췌장염 환자에서 추가 재발을 억제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데, 이 환자는 여러 번 재발한 환자이기 때문에 장기 예후를 고려하여 스테로이드와 함께 투여하였다.
이번 증례에서는 경구 스테로이드를 2주간 투약한 후 치료반응 평가를 통해 췌장암과 종괴 형성 자가면역 췌장염의 감별 진단에 도움을 얻었고 불필요한 수술을 피할 수 있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