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항인지질증후군은 혈청학적으로 항인지질항체(antiphospholipid antibody)가 최소 12주 간격으로 두 번 이상 양성을 보이면서 임상적으로 정맥, 동맥 혈전증 혹은 자연유산 등 임신 중의 합병증이 한 번 이상 있을 때 진단되는 질환이다. 원인 자가면역 질환이 없이 발생한 경우를 원발성, 전신성 홍반성 낭창과 같은 교원성 혈관질환이 동반된 경우를 이차성이라고 한다[1]. 항인지질증후군의 가장 흔한 임상양상은 정맥 혈전증, 특히 심부 하지 정맥 혈전증이며 허혈성 질환 혹은 경색증으로 나타나는 동맥 혈전증은 정맥 혈전증에 비해 적게 나타난다[2].
2002년 Ruiz-Irastorza 등[3]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혈전증 진단을 받고 항응고요법 중에 있던 66명의 항인지질증후군 환자에서 6명이 혈전증 재발을 경험하였다. 이 중 3명이 동맥 혈전증이었는데 각각 말초 동맥 색전증, 뇌졸증, 일과성 허혈성 발작이었다. 이처럼 항인지질증후군 환자에서 항응고요법 중에 혈전증이 재발하는 경우는 적으며 재발성 신경색증은 극히 드물다. 저자들은 41세 남자 환자에서 항응고요법 중 재발한 신경색증으로 진단된 원발성 항인지질증후군 증례를 경험하였기에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환 자: 41세, 남자
주 소: 내원 1시간 반 전부터 시작된 명치부 통증
현병력: 상기 41세 남자 환자는 2년 전 우측 옆구리 통증으로 내원하여 우측 신경색증을 진단받고 acetylsalicylic acid 100 mg, warfarin sodium 5.5 mg 복용 중이던 자로 내원 1시간 전부터 시작된 명치부 통증으로 응급실에 왔다. 점심으로 오리고기를 먹었고 한 시간 후부터 갑자기 명치부에 뒤틀리고 찢어질 듯이 심한 통증이 있었다.
과거력: 5년 전 고혈압을 진단받고 acetylsalicylic acid (100 mg), irbesartan (300 mg), atrovastatin (10 mg), spironolactone (12.5 mg), nifedipine (40 mg), doxazosin (4 mg), minoxidil (5 mg)을 하루에 한 번씩, carvedilol (25 mg)을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하였으며 2년 전 우측 신경색증 발병이후 warfarin sodium 5.5 mg을 복용하고 있었다.
가족력: 아버지가 간암으로 치료받고 있었으며 고혈압, 뇌혈관 질환의 가족력은 없었다.
사회력: 25년간 하루 반갑의 흡연력이 있으며 주 5회의 음주력이 있었다.
이학적 소견: 내원 당시 혈압 216/130 mmHg, 맥박수 61회/분, 호흡수 20회/분, 체온 36℃, 급성 병색이었으나 의식은 명료하였다. 결막은 창백하지 않았고, 공막에 황달은 없었다. 호흡음은 정상이었고, 심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상복부에 전반적인 복통을 호소하였으며 복부 진찰에서 왼쪽 배꼽 주위로 압통은 있었으나 반발통은 없었다. 장기는 커져 있지 않았으며 종물은 촉지되지 않았고 청진시에 장음은 정상이었다. 양측 옆구리 타진 시에 통증은 없었다.
검사 소견: 말초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13,480/mm3 (호중구 81.4%), 혈색소 16.8 g/dL, 헤마토크리트 48.9%, 혈소판 231,000/ mm3이었다. 혈청 생화학 검사에서 공복혈당 108 mg/dL, 혈중 요소질소 12 mg/dL, 크레아티닌 1.4 mg/dL, 나트륨 137 mEq/L, 칼륨 4.4 mEq/L, 클로라이드 101 mEq/L, AST 35 IU/L, ALT 35 IU/L, CPK 176 IU/L, LDH 1035 IU/L, 총 단백 7.5 g/dL, 혈청 알부민 4.3 g/dL, 총 콜레스테롤 142 mg/dL, 중성지방 235 mg/dL, ALP 69 IU/L였다. Prothrombin time (PT)은 INR 2.08, activated partial thromboplastin time (aPTT)은 36.9초였다. 요검사에서 비중 1.010, 요단백(2+), WBC 2-4/HPF, RBC 3-4/ HPF였고, 요세균배양 검사는 음성이었다. 심전도에서 정상 동율동을 보였으며 흉부방사선 사진에서 6년 전부터 있던 우중엽의 2 cm 결절 이외에 다른 소견은 없었다. 내원 당일 시행한 복부전산화 단층촬영에서 좌측 신장에 조영증강이 되지 않는 다병소성의 쐐기음영이 관찰되어 좌측 신경색증을 진단하였다. 우측 신장은 이전 신경색증에 의한 겉질 변형이 관찰되었다(Fig. 1). 입원 후 시행한 심장초음파에서는 심장내 색전증 소인은 보이지 않았고 하지 정맥 도플러스캔에서도 심부 정맥 혈전증은 관찰되지 않았다. 환자는 2년 전 우측 옆구리 통증으로 응급실 내원하여 복부전산화 단층촬영에서 우측 신장 구역경색, 우측 신동맥 혈전증을 보였으며 헤파린 사용 2일 후 심혈관 및 말초혈관 혈관조영술을 시행하여 신동맥 협착은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Fig. 2). 2년 전에는 단백질 C (protein C), 단백질 S (protein S), antithrombin III (AT-III)가 정상인 것을 확인하였으나 항체 검사는 시행하지 않았다. 이번 입원 기간에 시행한 혈청학적 검사에서 단백질 C (protein C) 41.6%, 단백질 S (protein S) 44.6%로 감소되었고, 항카디오리핀항체(anticardiolipin antibody), 항 β2-GP1 항체, 항인지질 항체(antiphospholipid antibody), immunoglobulin (G, A, M), 항핵항체(anti-nuclear Ab), ANCA, factor V Leiden mutation, 혈소판에 결합한 자가항체(platelet associated antibody)는 음성이었으며 루푸스항응고인자(lupus anticoagulant)가 양성을 보였다.
치료 및 경과: 헤파린 정맥요법을 시행하면서 이전 복용하던 고혈압 약을 복용하였고 5일간의 헤파린 투여 후 쿠마딘으로 전환하였다. 응급실에서 호소하던 명치부 통증은 입원 다음 날부터 호전되고 바로 좌측 옆구리 통증이 생겨 양측 옆구리 타진시에 좌측에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7일 후 완전 소실되었다. 내원 당시 혈압이 216/130 mmHg으로 높았으나 통증을 조절하고 고혈압 약을 복용하면서 수축기에 120-140 mmHg, 이완기에 70-100 mmHg로 유지되었다. 입원 다음 날부터 5일간 38℃ 이상의 발열이 있다가 호전되었으며 요, 혈액균배양 검사 모두 음성으로 신경색증에 의한 발열로 판단하였다. 입원 3일 후에 혈청 요소질소 15 mg/dL, 크레아티닌 1.9 mg/dL로 크레아티닌의 최고 상승치를 보이다가 퇴원 시 혈청 요소질소 18 mg/dL, 크레아티닌 1.6 mg/dL 으로 감소하였다. 입원 기간에 루푸스항응고인자(lupus anticoagulant)가 양성이 나와 항인지질증후군을 의심하게 되었고, 퇴원 3개월 후 외래에서 재검하여 양성을 확인하고 원발성 항인지질증후군을 확진하였다.
고 찰
증례의 환자는 5년 전 가끔 숨찬 증상이 있어 본원 외래를 방문하여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다. 2년 전 우측 옆구리 통증으로 신경색증을 처음 진단받기 세 달 전에 회사 건강 검진에서 간염 소견을 듣고 복부 초음파를 시행하여 간, 신장에 이상소견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환자의 고혈압은 신경색증 발생 이전에 진단된 것으로 신경색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신경색증의 주된 원인은 심장 혹은 대동맥 혈전에서 기원한 혈전 색전증과 신동맥에서 발생한 혈전증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동맥에서 발생한 혈전증은 흔하지 않다[4]. 드물게 항인지질증후군과 같은 과응고 상태에서 급성 혈전증이 발생하여 신동맥 폐색을 일으킬 수도 있다[5].
고혈압성 심질환 및 심방세동이 전신 색전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므로 이것과 항인지질증후군에 의한 전신 색전증을 감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심혈관 질환에 대한 검사로 비용 효율이 높은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 및 홀터모니터를 표준적인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 경흉부 초음파를 이용하여 심장내 혈전과 종괴를 발견하고 좌심실 기능을 평가하며 구조적 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심전도와 홀터모니터를 통해 심방세동, 심방조동 등의 부정맥을 확인할 수 있는데 홀터모니터에서는 심전도에 나타나지 않았던 발작성 부정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검사에서 심혈관 질환이 발견된다면 이에 대한 치료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므로 전신 색전증의 원인 감별은 매우 중요하다.
항인지질증후군에서는 항인지질 항체의 전응고제 작용을 포함한 항체가 응고 과정에 미치는 영향과 손상된 혈전 용해 작용으로 혈관 혈전증의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항인지질 항체가 혈관 긴장도를 상승시켜 동맥경화증, 유산, 신경학적 손상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한다. 즉 항인지질증후군에서 항인지질 항체가 혈관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으로 전신 색전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기원이 심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Amigo 등[6]은 원발성 항인지질증후군 환자 중 25%에서 신장관련 질환이 나타난다고 보고하였다. 원발성 항인지질증후군에서 발생하는 신장 병변은 주로 신장 혈관의 비염증성 폐색에 의한 것이다. 신장 동맥과 세동맥에 혈전이 생겨 반응성 내막 점액 비후, 내피밑 섬유, 중층 비후가 생기게 된다[7]. 또한 영향을 받은 사구체모세혈관에 메산지움 융해(mesangiolysis), 사구체 모세혈관벽을 따라 생기는 mesangial interposition과 동반된 혈전이 생겨 혈관폐색을 일으키기도 한다[8].
항인지질증후군 환자에서 혈전 색전증의 재발에 대한 연구를 보면 warfarin 복용 여부와 상관없이 연간 환자의 11%에서 재발하고 두 번 이상 발병하는 사례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9]. 항인지질증후군 환자 중 혈전증이 발생한 환자를 대상으로 warfarin을 복용할 때 PT INR 치료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보면 목표 INR을 3.1-4.0, 혹은 3.0-4.5로 표준 목표 INR 2.0-3.0보다 더 늘였을 때 혈전색전증 재발 방지에 입증된 유익은 없고 출혈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10]. 하지만 이와는 다른 결론을 얻은 연구도 있는데 Rosove 등[9]은 항인지질증후군 환자 중 혈전색전증이 있었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경과와 항혈전 치료에 대한 효과를 확인하였다. 70명의 환자를 치료받지 않은 환자, 아스피린만 복용한 환자, warfarin을 복용할 때 PT INR을 각각 1.9 이하, 2-2.9, 3 이상으로 조절했던 환자로 나누어 혈전성 사건 재발률을 확인하였는데 PT INR 수치가 높을수록 재발률이 낮은 것을 확인하였다.
항인지질증후군 환자에서 재발성 신경색증이 보고된 사례는 드물며 항응고요법 중에 신경색증이 발생한 경우 또한 흔하지 않다. 본 증례의 환자는 이전 우측 신경색증을 진단 받았던 환자로 항응고 치료 중에 재발성으로 좌측 신경색증이 발생하여 항인지질증후군이 진단된 보기드문 사례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