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급성 신피질 괴사는 신피질의 부분적 또는 완전 괴사를 유발하여 병리적으로 신피질의 광범위한 괴사 소견이 관찰되며, 전체 급성 신손상 환자의 약 1.9-7%에서 발견되는 드문 질환이다[1-3]. 괴사는 신장의 피막하와 신수질에는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신장동맥과 활꼴 동맥(arcuate artery)에는 이상 없이 엽사이동맥(interlobar artery)과 들세동맥(afferent arteriole)에만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4]. 명확한 기전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다양한 기저질환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혈관수축, 혈전에 의한 혈관손상, 미세순환계에서 발생하는 섬유성 혈전, 그리고 독소에 의한 모세혈관 내피의 손상으로 발생한다는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5-7].
원인으로는 산과적 질환, 용혈요독증후군, 대량 출혈, 패혈증, 저혈압, 파종성혈관내응고, 그리고 약물 등이 있다[6]. 1980년대 이전에는 산과적 원인이 주를 이루었으나 1980년 이후는 비산과적인 원인이 71%를 차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5,7]. 비산과적 원인 중에서는 1980년대 이전에는 패혈증이 흔한 원인이었으나 1980년 이후에는 Kim 등[5]은 약물을 흔한 원인으로 보고하였고, Prakash 등[2]은 용혈요독증후군을 흔한 원인으로 보고하였다. 국외에서는 트라넥사민산에 의해 유발된 급성 신피질 괴사를 보고한 바가 있으나[8-11], 국내에는 보고된 바가 없다. 이에 저자들은 트라넥사민산을 투약 받은 후 발생한 급성 신피질 괴사의 사례를 경험하여 이를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환 자: 이○○, 여자 49세
주 소: 혈액 흔적 가래
현병력: 내원일 10차례의 혈액 흔적 가래로 입원하였다.
과거력: 내원 3년 전 기관지 확장증 진단받았다.
가족력: 특이사항 없었다.
이학적 소견: 급성 병색을 보이고 있었으며 의식은 명료하였다. 활력 징후는 혈압 120/80 mmHg, 맥박수 80회/분, 호흡수 20회/분, 체온 36.6℃였다. 호흡음은 좌측 상엽에서 거품소리가 청진되었고, 심음은 정상이었다. 복부 청진상 장음은 정상이었고, 복부 팽만이나 복벽의 강직은 보이지 않았으며 촉지되는 종괴는 없었다. 사지 진찰상 양 하지의 부종 소견은 없었으며 신경학적 검사상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
검사실 소견: 말초혈액 검사상 백혈구 9,250/mm3(호중구 66.8%, 림프구 26.4%), 혈색소 11.7 g/dL, 혈소판 261,000/mm3이었다. 혈청 생화학 검사에서 혈액 요소질소 12.9 mg/dL, 크레아티닌 0.6 mg/dL, Na 140 mEq/L, K 4.0 mEq/L, Cl 109 mEq/L, Total CO2 content 25.1 mmol/L였으며 AST/ALT 22/19 IU/L, 총 단백질 6.5 g/dL, 알부민 3.9 g/dL였다. 요검사에서 비중 1.019, 단백질(-), 적혈구 0-1/HPF, 백혈구 3-5/HPF였다.
방사선 소견: 흉부 전산화 단층 촬영에서 폐의 좌측 상엽에 기관지 확장증이 관찰되었고, 양측 신장은 균일한 조영 증강을 보이고 있었으며 종괴나 낭종은 관찰되지 않았다(Fig. 1).
치료 및 경과: 객혈 증상 보여 트라넥사민산(트라넥삼산 주®, 신풍제약, 서울, 대한민국) 부하용량으로 6 g/day 정맥 주사되었고 객혈증상은 호전을 보였다. 입원 후 다음날 트라넥사민산 2 g/day 정맥 주사되었으며 기관지 내시경 검사 시행하였으나 현성 출혈은 보이지 않았다. 입원 3일째 트레넥사민산(도란사민캅셀Ⓡ, 제일약품, 서울, 대한민국) 경구 복용제제로 교체하여 750 mg/day로 복용하였다. 입원 4일째 무뇨와 부종 호소하여 시행한 말초혈액 검사상 백혈구 39,240/mm3 (호중구 93.7%, 림프구 2.7%), 혈색소 11.3 g/dL, 혈소판 84,000/mm3이었다. 혈청 생화학 검사에서 혈액 요소질소 75.2 mg/dL, 크레아티닌 6.2 mg/dL, Na 131 mEq/L, K 4.6 mEq/L, Cl 101 mEq/L, Total CO2 content 13.9 mmol/L, LDH 5,881 IU/L였다. 동맥혈가스분석검사는 pH 7.358, pCO2 27.3 mmHg, pO2 100.3 mmHg, HCO3-15.5 mmol/L였다. 혈액응고 검사에서 PT 12.1 sec (90%, INR; 1.07), aPTT 25.9 sec, D-dimer 0.32 μg/mL (< 0.5 μg/mL), FDP 2.8 μg/mL (0-5 μg/mL), Fibrinogen 834 mg/dL (200-450 mg/dL)였다. 혈청 면역학적 검사에서는 ANA, ANCA 모두 음성이었다. 말초도말 혈액 검사에서도 분열 적혈구는 관찰되지 않았다. 흉부 방사선 사진상 양측 흉수가 관찰되었다. 신기능 악화, 무뇨 및 부종 증상이 있어 혈액 투석을 시행하였다. 입원 7일째 신장 도플러초음파 검사에서 양측 신장의 혈관분포상태가 감소되어 나타났고 엽사이동맥에서는 저항 지수(Resistive index)가 측정되지 않을 만큼 혈관분포상태가 떨어져 있었다. 입원 8일째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을 시행하였고 양측 신장의 크기는 정상이었으며 신피질은 조영 증강 되지 않고 신수질은 조영 증강되어 나타났다(Fig. 2). 입원 18일째부터 소변양이 하루에 500 mL로 증가하였으나 신기능은 호전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혈액투석 시행하였다. 6개월 후 현재 혈액 요소질소 21.7 mg/dL, 크레아티닌 5.0 mg/dL로 혈액투석 중이다.
고 찰
트라넥사민산은 항섬유소용해 활성을 가짐으로써 다양한 임상 상황에서 출혈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12]. 그러나 혈전을 형성하는 정상적 방어기전 중 하나인 섬유소용해(fibrinolysis)를 저해함으로써 혈전색전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12]. 트라넥사민산 복용으로 인한 혈전색전성 합병증은 주로 폐색전증, 사지의 말단괴저 및 주요 혈관의 동정맥폐쇄 등이 보고되었다[13-15]. 그러나 트라넥사민산이 원인이 된 급성 신피질 괴사의 보고는 매우 드물며, 현재까지 4 증례가 국외에서 보고되었다[8-11].
트라넥사민산의 투여 용량과 급성 신피질 괴사 합병증 발생 가능성 사이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상태이나, 기존 증례 보고에서는 하루에 3 g씩, 4-5일간 정맥 주사하여 총 12-15 g이 투여되었다[9,11]. 한 번에 10 g 이상의 고용량 트라넥사민산을 투약한 연구들에서 급성 신피질 괴사의 합병증 보고는 없었다[16,17]. 본 증례의 경우 입원 첫날 6 g/day이 투여되었고, 총 8.75 g 투여 후 급성 신피질 괴사가 발생하였다. 기존 문헌 및 증례들을 고찰하여 보면, 트라넥사민산의 투여 용량과 급성 신피질 괴사 합병증 발생은 연관성이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급성 신피질 괴사의 임상양상은 구토, 급성 심와부 동통, 저혈압, 쇼크, 혈뇨, 핍뇨, 무뇨 등이 있으나 급성 신손상을 일으키는 다른 질환들과 임상양상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1]. 그러나 심한 핍뇨 혹은 무뇨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 의심해 볼 수 있겠다. 급성 신피질 괴사의 경우 심한 핍뇨 혹은 무뇨가 일반적인 급성 세뇨관 괴사에서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약 80%에서 무뇨증이 동반된다[3,5,6].
급성 신피질 괴사의 진단은 이전에는 조직검사를 통하여 진단하였으나, 최근에는 조영증강 전산화 단층 촬영이 초기에 이 질환을 진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고된다[18,19]. 환자의 대부분은 발병 당시 신기능의 이상이 있고 혈관응고장애가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조직검사를 시행하기에 위험성이 높아 진단이 미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조영증강 전산화 단층촬영은 비침습적으로, 피막하 피질과 신수질은 조영 증강되고 신피질이 조영 증강되지 않으며 조영제가 배출되지는 않는 것이 진단에 특이적인 소견이다[19,20]. 증례의 경우, 급성 신손상 발생 후 원인을 찾기 위해 신장 도플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였고 양측 신장의 혈관분포상태가 감소되어 있어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을 하였다.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에서 피막하 피질과 신수질은 조영 증강 되며 신피질은 조영 증강 되지 않는 소견을 보였다. 내원 당시 시행한 전산화 단층 촬영에서는 신피질의 조영증강은 정상적이었다. 따라서 입원 후 발생한 급성 신피질 괴사로 진단할 수 있었으며 임상양상과 혈액검사 등을 통하여 다른 원인들이 배제되어 트라넥사민산에 의한 경우로 진단하였다.
급성 신피질 괴사 환자의 대부분은 비가역적인 신장의 손상으로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한다[3,5,6]. Prakash 등[2]의 보고에 의하면 급성 신피질 괴사 환자에서 19.2%는 신기능이 회복되었고, 28%는 만성 신부전으로 지속적인 혈액투석이 필요하였다. 증례의 경우에도 발병 후 6개월째 신기능 회복되지 않고 혈액투석 중이다.
트라넥사민산 투약 시 드물게 급성 신피질 괴사와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약제 사용 시 적절한 적응증에 맞추어 처방하여야 하고, 투약 시 발생 가능한 합병증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