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변비는 서양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식생활 습관 등의 변화 등에 의하여 서서히 그 유병률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히 여성, 노인 층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1]. 변비가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 외로 심각하여 단순히 일상 생활에 불편을 주는 정도를 지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도 일부에서는 있는 실정이다. 임상적으로 변비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여러 가지 동반된 기질적인 질환에 동반된 부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타 약물 치료의 부작용으로 관찰되는 경우도 있어 그 병태생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근 대한 소화기학회에서는 변비의 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어 임상의들의 진단에 참고 문헌고찰 및 진단 방법에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2]. 본고에서는 변비의 병태생리와 진단에 관하여 임상 의사들이 실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본 론
변비의 병태 생리
변비의 병태 생리에 따라 크게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대변을 충분히 만들지 못할 만큼 음식 섭취가 적은 환자 군으로, 대개 체중 관리를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변비의 형태이다. 둘째, 변비 우세형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 군이다. 이들은 복통과 변비가 동반되어 나타나고 배변 후에는 증상이 호전되는 특징적인 병력을 갖고 있다. 셋째, 서행성 변비(slow transit constipation)에 속하는 환자군이다. 대장 운동이 감소되어 대장통과시간이 길어져서 변비가 생기는 군으로 정확한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대장에 있는 신경세포의 수가 감소되어 있거나, 장관의 운동을 담당하는 Cajal 간질 세포의 수가 감소되어 변비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넷째, 출구폐쇄형 변비 환자 군이다. 생리학적으로 배변은 변이 직장에 내려오면, 감각신경을 통하여 변의를 느낀 후 외항문괄약근과 치골직장근이 이완되면서 동시에 항문이 열려 배변을 하게되는 일련의 복합적인 생리과정이다. 이들 환자들은 배변 시 이완되어야 할 외항문 괄약근과 치골 직장근이 역설적으로 수축되어 출구가 폐색되어 변비가 생기는 군이다. 즉 과거 골반저근 실조증(pelvic floor dyssynergia, anismus)이라고 불리웠던 환자 군이다. 다섯째, 서행성 변비와 출구폐쇄형 변비가 함께 있는 경우, 여섯째, 대장암이나 협착 등의 기질적 이상에 의해 나타나는 변비, 일곱째, 당뇨나 갑상선 저하증과 같은 내분비계 질환이나 결체조직 질환으로 발생한 변비로 나눌 수 있다. 그 외에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직장감각능의 저하로 인한 변비가 발생하는 직장감각저하(rectal hyposensitivity)에 의한 변비도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3].
변비의 진단
변비의 증상
변비를 주소로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다양한 증상을 변비라고 표현한다. 의학적으로는 변비는 주로 횟수를 강조하여 배변이 3-4일에 한번인 경우로 정의된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배변 시 과도하게 힘주는 경우로 생각하는 것이 52%, 단단한 변 44%, 배출장애 34%, 배변의 횟수가 적은 경우 32%, 불완전 배변 19%, 그리고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긴 경우 11% 등을 변비라고 생각하였다[4]. 가장 최근에 개정된 2006년판 로마 기준 III 진단 기준에 따르면, 변비의 대표적인 증상인 과도한 힘주기, 딱딱한 변, 불완전 배출감, 직장항문 폐색감, 적은 배변 횟수, 원활한 배변을 위한 부가적인 처치 등 여섯 가지 중 두 가지 이상의 증상들이 6개월 전에 시작되었고 지난 3개월 동안 있는 경우를 뜻한다[5] (Table 1).
검사법
변비의 진단은 환자의 자세한 병력과 신체검사를 시행 한 후, 동반된 기질적인 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변비의 병태 생리를 평가할 수 있는 대장항문 운동기능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변비를 일으킬 수 있는 기질적인 질환으로는 대사성 질환(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병, 고칼슘혈증 등), 근육병증(아밀로이드증 등), 신경계 질환(파킨슨 병, 다발성 경화증, 척수질환 등), 약물(마약계 진통제, 삼환계 항우울증약 등), 대장암 등이 있다. 따라서 변비의 기질적인 원인을 배제하는 데 있어, 혈액 검사(갑상선 기능 검사, 혈청 칼슘 검사 등), 내시경 검사(구불 창자 내시경 검사, 대장 내시경 검사)와 영상의학적 검사(단순복부 촬영 검사, 이중 조영 바륨 대장 조영술) 등의 다양한 검사의 도움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수지직장검사(digital rectal exam)
가장 간단하여 외래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검사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제대로 행하고 있지는 못한 검사 중의 하나로서,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수지직장검사 만으로 만성 변비 환자 중에서 골반저근 실조증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각각 75%의 민감도와 87%의 특이도를 보였다고 한다[6]. 실제 임상에서는 항문과 그 주변 구조물을 잘 살펴야 하며, 특히 여자 환자의 경우 과거 출산력에서 질식분만(vaginal delivery) 여부를 확인하여, 회음부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여 동반된 신경 손상이 있는지 파악하여야 한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증상이 없다가 뒤늦게 나이가 들어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또한 관찰에 있어서는 동반된 피부 질환, 항문치열(anal fissure), 치핵 등이 있는지 확인하여야 하며, 항문 주위의 4분면에서 면봉의 끝을 이용하여 항문피부반사(anocutaneous reflex)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항문 주변 피부를 면봉의 부드러운 끝 또는 딱딱한 나무 끝으로 자극하였을 때 외항문괄약근(external anal sphincter)이 정상적으로 수축하는지 확인한다. 만약 떨어져 있거나 전혀 반응이 없다면 엉치신경얼기(sacral nerve plexus)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 환자의 항문에 검사자의 검지를 삽입한 후 다른 쪽 손으로 환자의 아랫배를 누르면서 배변을 보는 시늉을 하게 한 다음 환자의 복압이 제대로 검사자의 손을 밀어내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항문에 삽입된 검지의 감각을 통하여 환자가 제대로 직장을 하강하고 있는지 및 항문괄약근이 제대로 이완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만약 항문괄약근이 역으로 강하게 수축하거나 직장 하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동반된 골반저실조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기존의 약물치료보다는 잘못된 배변 습관을 바로잡는 바이오 피드백 치료가 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혈액검사
갑상선 기능저하증에서 변비는 잘 알려진 증상이지만, 최근 김 등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 서행성 변비는 갑상선 기능저하증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며[7], 과거 연구에서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서는 기능 정상인에 비하면 배변횟수가 낮은 경향을 보였지만, 약 70% 이상에서 적어도 매일 1회 이상 배변 횟수를 보였다고 한다[8]. 따라서 변비 환자에서 갑상선 기능저하증의 다른 증상이 관찰되지 않는다면 굳이 갑상선 기능검사를 시행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 혈청 칼슘 검사도 그 근거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9].
내시경
내시경은 대장의 악성 종양, 고립성 직장 궤양(solitary rectal ulcer syndrome), 염증성 장질환 등을 감별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변비의 기질적인 질환을 배제하기 위한 선별 목적으로서의 역할은 다소 제한적이다. 2005년 미국 소화기내시경 학회에서는 변비 환자에서 직장 출혈, 분변잠혈반응검사 양성, 철결핍성빈혈, 체중감소, 폐쇄증상, 최근에 발병한 변비, 직장탈출증 또는 변 굵기의 변화를 보이는 경우나 과거 대장암 검진을 받은 적이 없는 50세 이상의 성인 변비 환자에서 대장 내시경을 권고하였다[10]. 결론적으로 빈혈, 혈변, 분변잠혈반응검사 양성, 또는 체중감소 소견이 동반되지 않은, 단순한 변비 증상 자체만으로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는 근거는 아직까지 없다.
영상의학
단순 복부 촬영 검사는 저렴하고 손쉽게 병력과 신체진찰 소견을 보완해줄 수 있지만 그 임상적 유용성은 그리 많지 않다. 변비 환자에서는 기질적인 원인을 배제하기 위한 선별 목적으로서 이중조영 바륨검사의 연구가 제한적이다. 한 연구에서는 항문직장 근 절제술이 필요한 변비 환자들의 이중조영 바륨검사에서 특이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고[11],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이중조영 바륨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보인 환자들의 변비 유병률이 정상 소견을 보인 환자들의 변비 유병률과 유사하였다[12]. 따라서 변비 환자에서 단순 복부 촬영검사나 이중조영 바륨검사를 기질적인 질환을 배제하기 위하여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근거는 다소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항문 기능검사
대장통과시간 측정
대장통과시간 측정법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방사선 비투과 표지자를 이용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9]. 국내에서는 방사선 비투과 표지자법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1캡슐에 20개 또는 24개의 표지자가 들어있는 캡슐을 복용한 후 일정 시간 후에 단순복부촬영을 하여 대장 내에 남아 있는 표지자의 수를 세어서 전체 대장통과시간 및 구획별 통과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다[13]. 일반적으로는 처음 복부 촬영을 하고, 캡슐을 3일간 매일 복용한 후 4일 또는 7일째에 복부촬영을 하여, 남아있는 방사선 비투과 표지자의 개수를 세는 방법을 이용하여, 대장 구획에 따른 변비 아형을 알 수 있다. 즉, 전 대장에 걸쳐 통과시간이 지연되어 있는 서행성 변비(slow transit constipation) 또는 대장 무력증(colonic inertia), 직장 및 구불 경장에서의 통과시간에 지연을 보이는 출구폐쇄형 변비(outlet obstruction) 및 정상 범위인 정상 통과 시간형 변비(normal transit constipation)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13,14]. 일부에서는 세분하여 우측대장의 지연을 대장무력증, 좌측 대장의 지연을 후장 기능장애(hindgut dysfunction), 직장 및 구불 결장의 지연을 골반출구폐쇄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직장항문내압검사
변비 환자에서 직장과 항문의 상태를 평가하여 배변에 있어 이상 기능을 확인하는 검사법으로 특히 배출장애 환자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검사법이라 할 수 있다[9]. 압력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된 측정관을 항문을 통하여 환자의 직장 부위에 삽입한 후 항문관 길이의 측정 및 직장 내 압력과 항문괄약근의 압력을 측정하면서, 직장항문억제 반사를 측정할 수 있다. 즉, 배변을 위한 추진력 측정 (직장의 압력 변화)과 배변 과정에서 외항문 괄약근과 치골직장근의 이완 여부 등을 확인하여 직장과 항문에서 배변 시 이상적인 배변 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검사상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15]. Rao 등에 의하면, 실제 배변과 유사한 bearing down 동작을 통하여 적어도 4개의 아형으로 골반저실조증을 분류가 가능하며, 이 중 3개의 비정상적인 아형에서는 바이오피드백 치료법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16,17]. 그리고 직장항문 억제 반사를 통하여 소아에서는 Hirschsprung 병을 진단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어른에서도 드물게 발병하는 adult onset Hirschsprung병이 진단될 수 있으므로, 주의깊게 관찰하여야 한다[18]. 최근에는 고해상도 내압검사법(high-resolution manometry)가 개발되어 쓰이고 있는데, 과거의 대여섯개 채널에서 감지된 압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수십채널에서 감지된 압력을 바탕으로 더 자세한 직장항문의 구조 및 생리에 대한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9].
배변조영술
항문괄약근, 치골직장근에 의한 직장 및 항문이 배변 시에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정확한 형태 변화를 투시 조영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는 검사법이다. 즉, 직장 및 항문의 기질적인 병변을 검사하고 실제 배변 시에 항문 및 직장 주변의 구조물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파악이 가능하여, 변비의 병태 생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21,22]. 조영제가 혼합된 인공 대변 250 cc를 관장용 주사기를 통하여 항문 내에 주입한 후 특수 제작된 변기에 환자를 앉힌 후 투시 조영 및 비디오 녹화를 통하여 안정시와 항문 압축 시, 및 배변 시의 항문 직장각과 회음부의 하강 정도를 측정하고, 배변 시의 항문 직경을 계측한다.
최근에는 방사선에 노출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이용한 MR 배변 조영술(dynamic MR defecography)을 이용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23].
결 론
변비의 진단에 있어 일차적으로 기왕력 청취 및 관련 증상의 파악, 이학적 검사 등이 중요하지만 기질적 또는 기능적 원인에 의한 변비 감별에는 도움을 주는 데 한계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40세 이상 또는 젊은 연령에서 대장암의 가족력이 있는 환자들 중에서 혈변, 지속적인 가는 변, 체중감소, 식욕저하를 동반하는 복통 등 경고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기질적 질환을 배제하기 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변비의 원인이 기능성으로 추정되는 경우, 그 병태생리를 규명하고 치료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자세한 병력 청취를 비롯한 수지직장검사를 통하여, 보다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경우, 대장항문 기능검사 및 대장통과시간 측정 등이 필요하며 이러한 여러 기능 검사를 토대로 진단 및 치료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